성륜수의 노트

2026년 02월 17일

금융 인프라의 지능 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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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륜수

Green ceramic statue of a man.

서비스형 인텔리전스 (Intelligence as a Service)

살아가기 꽤나 흥미로운 시대다. 강화 학습 연구의 비약적인 진보와 병렬 컴퓨팅에 쏟아지는 천문학적인 투자로 지능의 단위 비용이 끝없이 추락하면서, 우리는 점차 극단적으로 엇갈린 두 가지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풍부해진 지능이 소수 고성과자들의 생산성을 폭발시켜 노동력의 99%를 대체하는 세상을 예견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AGI(범용 인공지능)가 결국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GPU와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쏟아부은 수조 달러가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 믿는다. 후자의 진영은 이를 실리콘밸리 특유의 몽상으로 치부하며, LLM은 그저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기계'일 뿐인데 지능이라는 허울 좋은 약속으로 대중을 기만한다고 비판한다.

진부한 클리셰로 들릴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나는 그 결과가 '그 중간 어딘가'일 것이라 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위험 조정 수익률(Risk-adjusted return)이 가장 확실한 포지션이다. '토큰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이라는 단 하나의 확정적인 결과에 경로 의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프런티어 모델 혹은 SOTA 모델들은 이미 일반적인 추론을 포함한 특정 작업에서 숙련된 인간의 결과물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다. 출시 초기에는 응답당 토큰 소모량이 많지만, 엔지니어들은 곧 모델을 증류(Distill)하고 최적화하여 훨씬 적은 비용으로 유사한 성능을 뽑아내는 방법을 찾아낸다. 설령 다음 프런티어 모델이 유의미한 성능 향상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AI 거품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시나리오) 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차대조표상 GPU 자산 상각 압박 때문이라도 '달러당 지능'이 하락하는 궤적만은 보장되어 있다.

많은 기업이 이러한 추세를 인지하고, 비록 그 성공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온디맨드(On-demand) 인공지능을 자사 제품에 통합해 왔다. 바야흐로 '서비스형 인텔리전스(Intelligence as a Service)' 경제의 서막이다.

왜 (대부분의) AI 금융 제품은 엉망인가

도구 호출(Tool-calling) 기능을 갖추고 장기 추론이 가능한 LLM의 등장은 흔히 화이트칼라 직업으로 정의되는 지식 노동의 자동화 속도를 상당히 앞당겼다. 이에 따라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사인 OpenAI와 Anthropic을 포함한 스타트업들은 언어 모델 고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RAG(검색 증강 생성) 같은 기술을 접목, 회계부터 투자 리서치 업무에 이르는 고수익 금융 서비스 산업을 겨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스증권이나 야후 파이낸스 등 AI 시황 서비스 기능을 써봤다면 느꼈겠지만, 오라클의 주가가 오르든 내리든 횡보하든 서비스가 알려주는 이유는 똑같이 'AI 인프라 투자 가속화' 때문이다. 물론 대규모 서비스 특성상 예산 제약으로 최고 성능 모델을 쓰지 못하거나, 좁은 UI 창에 요약을 구겨 넣어야 하는 사정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3일 전 급등했을 때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이유로 오늘 폭락했다고 설명한다면, 그건 사용자에게 아무런 효용도 주지 못하는 셈이니 존재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AI 요약의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그저 시장 상황을 논평하는 최신 블룸버그나 WSJ 기사들을 긁어와 RAG로 재탕한 답변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그런 논평들은 보통 한 애널리스트가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을 짐작한 또 다른 애널리스트의 추측을 그럴싸하게 재포장한 것일 뿐이다. 애널리스트들의 논평이 쓸모없다는 게 아니다. 적어도 사후적으로나마 시장 합의를 형성하는 기능은 한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일상적인 미디어의 대부분은 '정보라는 라벨이 붙은 소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치는 단순한 지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능을 지휘하는 프레임워크에 있다.

가치의 초석

금융 애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기술 중 하나는 정교한 현금흐름할인법(DCF) 모델을 구축하는 능력이다. 이 모델들은 복잡한 재무제표를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변환하고, 리서치 과정에서 식별한 핵심 비즈니스 및 운영 레버(Lever)를 내재화하여, 미래 현금 흐름을 합산하고 이를 화폐의 시간 가치로 할인해 현재 가치를 산출한다.

한때 미국 투자은행 업계에 진입하고자 했던 학생으로서(비록 그 명성에 이끌린 외재적 동기가 컸을지라도) 나는 전직 벌지 브래킷(Bulge Bracket) 뱅커들이 진행하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접했다. 그들은 재무제표 해석과 엑셀시트 모델링을 가르치고, 3대 재무제표 간의 연관성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해야되는지 등 인터뷰 준비를 도와준다. 채용 기회가 인맥에 크게 좌우되는 업계 현실은 차치하더라도, 펀더멘털에 뿌리를 둔 DCF 프레임워크에 대한 이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며 다소 후행적인 지표인 PBR 같은 평가 방법들과 대조된다. 비평가들은 종종 'GIGO(Garbage In, Garbage Out)' 문제를 들어 DCF를 구시대적이거나 이론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하지만 진지한 투자자에게 DCF는 미래를 보는 수정구슬이 아니라, 리스크 시뮬레이션 엔진이다. 정성적인 내러티브를 정량적인 가치로 엄격하게 변환하도록 강제하는 유일한 프레임워크다. 모델링의 궁극적인 목표는 "엔비디아가 200달러 갈 것이다"라고 예언하는 게 아니다. "만약 AI 채택률이 10% 둔화된다면, 엔비디아의 적정 가치는 150달러로 하락한다"는 시나리오를 검증하기 위해 수천 가지 경로를 번역해 내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을 예측하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더 멀리 깊게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만약 누군가 그럴 수 있다면, 모든 정보는 이미 가격에 선반영되었을 테니 고도화된 추측으로 돈을 벌려는 참여자들을 위한 금융 시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특정 시점이 되면 가장 정교한 투자자들조차 환경 조건들의 범위와 이에 상응하는 재무적 결과를 설정함으로써, 투자기간 내에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지, 혹은 않을지의 여부에 베팅해야만 한다. 이를 민감도 분석이라 한다. 이런 '예상된 불확실성'을 고려함에도, 소위 '천 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재앙적 사건이 발생해 초기 리스크 평가를 박살 내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는 이런 재앙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는 정규분포를 사용하는것의 부산물이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여러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DCF의 묘미는 고도로 훈련된 애널리스트의 '근거 있는 가정'을 미래 재무제표로 연결하는 유연성에 있으며, 동시에 자산의 가치를 표준화된 방법으로 계산한다는 점에 있다. 반대로, 이의 가장 큰 약점 또한 자산의 운영 모델에 대한 해당 애널리스트의 이해도—그것이 고객 만족도 원천 데이터든 가격 결정력 논리든—즉 그의 '금융 지능'의 견고함에 달려 있다.

금융 인프라의 인텔리전스 레이어

청산소부터 보험 심사역을 위한 리스크 모델링 소프트웨어까지, 금융 인프라는 본질적으로 거래 비용을 낮추고 리스크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존재하며, 따라서 이론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효율적인 시장을 만든다.

오늘날의 금융 환경은 20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퀀트 알고리즘이 유가증권시장의 거래량을 장악했고, 최근 들어서는 예측 베팅 시장이 2027년 이전에 예수가 재림할 확률(이게 사회 효율성 증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까지 포함해 사회의 모든 방향을 금융화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미디어와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점점 소음이 되어 홍수를 이루고 있고, 생성형 AI로 인한 가짜 콘텐츠 비용 하락과 0에 수렴하는 한계 배포 비용은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지금이야말로 소음 속에서 신호를 찾아내는 금융 인프라의 인텔리전스 레이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할 것이다.

Generative Logic Engine (생성형 논리 엔진)

타고난 공상가이자 투자자로서 나는 하나의 결정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결과들을 상상해보곤 했다. 이러한 창의적인 사고 실험들은 이후 나를 낮은 PBR 주식만 쳐다보던 전형적인 '가치 투자자'에서 사람과 기술 같은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에 주목하게 만들어주었다. 일반적으로 재무제표에는 찍히지 않는 자산들이다.

금융권에서 '창의성'이란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건 과거 구조화 상품들에 적용된 기발한 금융 공학 기법들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금융사들의 리스크 모델이 구조화 신용 상품들의 부도 확률을 희박하게 잡았던 건 오히려 "미국 주택시장 전체가 망가질 일은 없다"는 창의성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본다. 진정한 창의성은 순진한 낙관이 아니라,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는 편향이다.

작년 9월 시장이 오라클의 어닝 서프라이즈에 환호할 때 우리가 자금 조달 리스크를 포착하게 해 준 건 바로 저런 종류의 창의성이었다. 당시 AI 요약은 "기록적인 수주 잔고와 클라우드 성장 기대로 주가 상승"이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우리의 논리 토폴로지(Topology)를 대입하자 전혀 다른 결론이 나왔다. "오라클은 주가에 반영되지 않은 거대한 부채 및 고객 집중 리스크를 안고 있다."

생성형 논리 엔진은 이 과정을 시스템화한 것이다. 재무 모델링의 GIGO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롬프트 하나 던져놓고 다음 프런티어 모델이 알아서 해주길 기도할 순 없다. 우리에게는 논리 토폴로지(인간의 통찰력과 기계의 처리가 자유롭게 교차하는 구조화된 노드 맵)가 필요하다.

이 엔진은 다계층 파생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밸류에이션 가정을 일련의 의존성 사슬로 분해하는 것이다. 레이어 0에서 과거 성장률이나 매크로 데이터를 긁어오는 것으로 시작해, 더 깊은 레이어에는 자체 논리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핵심 고객사의 설비투자 가이던스를 분석하거나, 네트워크 엔지니어 포럼의 정제된 센티먼트 데이터를 파싱해 실제 제품 경쟁력을 평가한다. 금융 논리의 위상(Topology)과 대조함으로써, 이 엔진은 쏟아지는 소음을 금융 모델을 위한 '방어 가능한 정교한 가정'으로 해독해 낸다.

청사진

단순 지능의 한계비용은 0을 향해 수렴중이다. 하지만 구조화된 금융 추론의 수요는 오직 우상향 중이다. 궁극적으로 'AI 네이티브'라는 구분은 소음일 뿐이다. 진정한 가치는 오로지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 진보를 이끄는 능력에서 나온다.

금융 인프라의 미래가 그 어떤 자산가치 평가 프로세스에도 통합될 수 있는, 고차원적 논리로 구성된 지능 레이어에 있다고 믿는 빌더나 투자자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AWARE LAB에서 만들고 있는 인프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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