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주100시간 35세 행원 과로사에...美대형은행, 주 80시간 근무 제한 추진” 기사에서:
미국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저연차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 100시간 이상 근무하던 35세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직원이 지난 5월 사망한 뒤 은행 업계 내부에서 ‘직원 보호가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내놓은 대책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 시각)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의 경우 주니어 투자 은행원들의 근무 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새로운 시간 관리 도구를 도입할 계획을 세웠다. 주니어 은행원들이 자기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더 상세히 설명하도록 요구하겠다는 내용이다.
WSJ는 “초봉이 20만 달러(약 2억 7400만원)에 달하는 주니어 직원의 근무시간을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월스트리트를 분열시켜 왔다”며 “매년 수천 명의 청년들이 열심히 일하면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업계 명성에 이끌려 투자은행에 발을 들이는데, 이들 중 다수는 장시간 업무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고 했다.
월가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말단 애널리스트는 행원은 아니고, 사원에 가깝다고 봐야한다. 미국은 투자은행(Investment Bank)과 소매은행(Retail Bank) 종사자들의 임금 수준 차이가 큰 편인데, 우리가 신한은행 지점가서 볼 수 있는 ‘행원’들은 “Teller“ 혹은 “Relationship Manager”등으로 부른다. 지점 행원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지원할 수 있고, 임금도 시간제로 받는등 낮은편이다. 우리나라 은행원들은 상대적으로 고학력에 임금 수준도 높다.
월가 투자은행(IB)에서 일하는 애널리스트는 어떤일을 하는지 알려면 투자은행의 주 수입원을 알아야 할텐데, 보통은 Advisory & Financing 이라는 업무를 통해 수수료 매출을 만들어낸다.
Advisory라 함은 회사가 새롭게 상장을 할 때 주관을 한다거나,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을 할 때 자문을 해주는걸 말한다. 보통은 주관이나 자문의 계약(deal) 사이즈에 일정 비율을 곱해 수수료를 책정한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에서 A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나스닥에 신규로 상장하는 것을 주관하는 업무를 맡았다면, 신규 상장을 통해 유입되는 에쿼티(자본)의 1%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식이다. A회사가 1,000억 달러 밸류에이션에 상장해서 100억 달러를 조달 했다면 100억 달러에 대한 1%인 1억 달러(약 1,330억원)가 수수료로 잡히는 셈이다.
Financing은 주로 인수금융을 뜻하는데,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할 때 LBO(차입 매수)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회사나 계약마다 금리나 상환조건이 매우 달라지지만 대체적으로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부문이다. 보통 Advisory 서비스와 번들(?)처럼 제공된다.
잠재 고객들과 만나는 MD(Managing Director; 팀장 혹은 부서장에 준하는 직책)들은 주로 “Teaser”라는 장표등을 통해 고객사의 밸류에이션을 측정한 결과와(“XX 밸류에이션에 상장 가능하다”)기타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서 보내준다. 그러면서 잠재 고객이 관심을 가지면 점심도 사주고 골프도 쳐주면서 라포(?)를 쌓아놓고, 때가 되면 딜을 따오는것이다. 그래서 투자은행 MD들을 “rainmaker”라 부른다. 회사에 돈 벌어오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래서 이 “Teaser”에 들어가는 내용과 전문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MD들은 보통 자기 밑에 있는 VP(Vice President), Associate, Analyst들에게 특정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teaser를 만들어 오라고 시킨다. 이 중에서 가장 말단의 애널리스트들이 주로 하는 업무는 파이낸셜 모델링이다. 파이낸셜 모델링의 범위는 무척 넓기 때문에 하나로 콕 찝어서 정의할 수 없지만 주로 현금할인모형(DCF)을 이용해 한 회사의 가치를 산정하는걸 뜻한다. 기존 데이터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성장률, 이익률등을 합리적으로 추정해야하는 업무이다. 회사의 가치 산정값에 대한 논리와 근거가 매우 탄탄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많이 소요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100개의 teaser를 만들어서 100군데의 잠재 고객들에게 연락해봐야 한개의 딜을 따올랑말랑 하다는것이다. 모든 잠재 고객들이 상장이나 인수합병, 금융등을 당장 필요로 하지 않을뿐더러, 필요로 하더라도 여러 조건을 따져가며 선택한다.
결국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는 데이터를 취합해 엑셀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된다. MD가 지시하는 자료를 만들어오는 셔틀인데, 당장 일이 없더라도 딜이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회사에서 대기상태에 있어야하며 MD가 요구하는 기한내에 자료를 제출해야(Associate, VP들의 검사도 받아야 한다)하기 때문에 일이 생기면 밤을 새가며 일해야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파이낸셜 모델링이나 장표 제작은 여러 사람이 한다고 해서 선형적으로 더 빨라지지도 않기 때문에 인원 충원으로 근무 시간을 낮추는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주 80시간 제한, 일요일 근무 금지 등의 조건을 내걸어도 주 80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도 미국 월가 애널리스트처럼 직원들이 주 80~100시간 일하면 생산성이 오르고 혁신이 생길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스타트업 대표나 VC, 기업 임원들의 포스팅이 갑자기 여기저기 보이길래, 월가 애널리스트가 하는일의 99%는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엑셀 노가일 뿐이다라는 내 의견을 한번 말씀 드려보고 싶었다. 물론 근무시간이 늘어나면서 생산성과 혁신이 비선형적으로 증가하는 매우 니치한 분야가 한정적으로 있을수는 있겠으나, 적어도 금융업은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사회에 혁신을 불러오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한 비유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인용이 많이 된 논문들은 주당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생산성이 저하되는 경향을 보고하고는 하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론하는자들은 저런 논문들이 생산성을 주로 공장의 라인 노동자 등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을 표본으로 삼았다며,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법률 등 지식노동 분야는 주당 노동시간을 높일수록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일론 머스크의 SpaceX같은 기업은 주당 노동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면 불가능 했을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에 따라 만성적인 수면 및 운동 부족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집중하며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난제를 해결할수도 있고, 피곤에 찌들어 새로운 생각을 해내지 못할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생산성은 측정하기 나름이다. 지난 수십년간 현대의 경제학자들이 생산성에 대한 완벽한 방법론을 정립했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경제학자들은 종종 틀리고, 완벽한 방법론은 허상에 가깝다.
예를 들어, 지식 노동자라 할 수 있는 한 회계사가 1년에 100개 기업의 감사 업무를 맡고, 그 옆에 있는 회계사는 50개 기업의 감사 업무를 맡는다면 누가 더 생산성이 높은것일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두 회계사가 맡는 기업들의 평균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물어볼 것이고, 조금 더 디테일한 사람은 회계사들이 감사하는 기업의 업종이 원가와 재고 및 자산관리가 중요한 제조업인지, 그렇지 않은 서비스업인지 물어볼 것이다. 결국 생산성이란 인간이 창조해낸 지표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걸 말하고 싶다.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고 거기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는게 의미없다는 주장을 펼치는것은 아니다. 사람이 한가지에 대해서 노력과 시간을 쏟는다면 숙련도와 전문성은 비례해서 증가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강조하듯 새벽 5시에 일어나거나 주 80시간을 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번외로 필자는 금융은 “자기가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학벌 좋은 멍청이들” 같은 타입이 종사하기 가장 적합한 분야고 그래야 사회적으로 이익이라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함의는 아래에 링크할 포스팅으로 갈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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