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타임즈의 Lisa Pollack은 자문자답을 한다: "우리는 금융에서 복잡성을 만드는데 왜 이렇게 뛰어날까?" 그녀는 "Flynn Effect"라는 답을 내놓는다. 간단히 말해 인간의 지능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다는 주장이다. 금융이 점점 복잡해지는 이유는, 이 관점에서는, 금융인들이 점점 더 똑똑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융은 항상 복잡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불투명 했다. 그리고 복잡성은 투명한 척 하는 사회에서 불투명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이다. 불투명성은 현대 금융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버그가 아니며 특성이며, 우리가 경제적 리스크를 지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바뀔 수 없다. 현재의 금융에서 가장 핵심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만일 그 정도에 대해 자세히 알았으면 지지 않았을 리스크를 지게 만드는데에 있다.
금융 시스템들은 집단 행동이 필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일 세상의 모든 투자 프로젝트들의 비용과 리스크가 완벽히 투명했더라면, 대부분 사람들은 겁을 먹고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업은 정말 위험하다. 심지어 어떤 한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같이 진행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의 성공 여부와도 연동되어있다. 농경사회에서 어떤 자본가가 자동차 공장을 짓는다면 실패할 것이다. 그녀의 동료들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공급하지 못할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 공장을 지어서 차량들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자본이 적고 생산성이 낮은 농부들은 그 차량을 구매할 돈이 없을것이다. 실물 투자의 성공은 어떤 한 고립된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긍정론자들이 파도처럼 떼지어 도전하고, 대부분은 불타 죽어버리지만, 그 와중에서 성공하는 몇몇이 세상을 위해 위대한 것들을 하고 투자자들을 부유하게 만든다. 그러나 승자들은 패자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Qwest (미국의 파산한 통신사)가 랜선을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았으면 물건을 한번 팔 때 마다 10원씩 손해를 보지만 물량으로 만회하는 아마존 같은 회사들은 존재하지 않았을것이다. 1997년의 어마무시한 테크 붐 속에서도 아마존은 어정쩡한 투자 대상이었다. 같은 공간을 향후했던 수천개의 스타트업들의 성장과 모멘텀이 없었더라면 (그 중 상당수는 망해버렸다)아마존에 투자하는것은 아마도 미친짓 이었을것이다.
금융 시스템의 한가지 목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투자에 우호적인 환경에 있도록 하는것이다. 투자 붐이 일어날 때는 (2020-21년 처럼) 일반 사람들도 투명한 고위험 프로젝트들에 직접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때는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개인들은 합리적으로 투자하지 않을것이다. 고립된 개별 프로젝트는 위험하다고 여겨질것이며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될 것이다. 저축을 하는 사람들은 낮은 리스크에 비교적 확실한 수익률을 주는 프로젝트를 선호할것이다. 예를 들면 창고나 상품 저장소 말이다. 심지어는 위험이 큰 여러 프로젝트들에 분산투자 하는것도 매력적이지 않을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도 그러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말이다.
우리는 이 게임을 두고 내쉬 균형 (죄수의 딜레마)에 비유할 수 있다 (ROW: 나머지 세계).
만약 모든 사람들이 투자를 한다면 우리는 모두 더 나은 결과나 투자 성공률을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개인 한명이 투자하고 나머지 세계는 투자하지 않는다면 해당 개인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두 균형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왼쪽 위고 하나는 오른쪽 아래이다. 만약 모두가 투자하지 않고 비관적인 전망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모두 나쁜 균형점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야수의 심장은 게임이론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바로 은행과 금융이 풀기 위해 진화한 문제이다. 은행 시스템은 사업가와 투자자들 사이에서 위치한 사기와 천재성의 중첩물이다. 은행은 위험이 큰 투자와 수익이 없는 현금 쌓아두기 사이에서 대안을 제공한다. 은행은 돈을 가지고 있는것 보다는 나은 수익률을 보장하며 이 수익률을 조건 없이, 확실하게 제공한다. 다른 투자자들이 투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매트릭스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매트릭스 아래서는 오로지 한가지 균형점만 존재하고, 이는 왼쪽 위의 것 (2, 2)이다. 은행들은 모두에게 2 만큼의 수익을 보장하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은행에 투자한다. 모든 사람들이 투자했기 때문에 은행들은 실물 프로젝트에 충분한 규모로 투자할 수 있으며 이는 3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은행은 1 만큼의 수익을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2를 배분하며, 모두가 나쁜 균형점에서 있었을 때 보다 더 나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은행들은 결과적으로 세상을 더 나은곳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지키지 못할수도 있는 약속을 함으로써. (그들은 투자금을 충분한 규모로 모집하지 못하거나 투자한 프로젝트들이 예상한 것 보다 성과가 좋지 않을 경우 약속을 지켜내지 못할수도 있다.)
우리가 나쁜 균형점에서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약속 하는것은 쉽지만, 그 약속을 믿게 하는것은 어렵다. 투자자들은 은행이 마법의 재테크 기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걸 알고 있고, 결국 모인 투자금들은 개인들이 거절할 프로젝트들에 투자될 것을 알고 있다. 은행들이 약속한 위험 없는 수익은 결과적으로 위험이 없을수가 없으며, 이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선의의 사기는 왜 가끔씩 효과적인 것일까? 투자자들은 왜 보증 없는 약속을 믿으며, 은행을 통해 투자할까?
대부분의 뛰어난 사기꾼들이 그런것처럼, 은행들은 투자자 개개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떠한 사람은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당신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신은 사기의 피해자가 아니라, 참여자인 셈이다. 무언가 잘못된다면 폭탄을 떠앉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은 당신이 아닐 것이라는 약속을 은행들로부터 받는다. 은행들은 되게 다양한 방식으로 약속한다. 첫번째로, 돈을 언제 어디서나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당신은 당신의 돈을 언제나, 원할 때 돌려받을 수 있다. 조금만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 당신은 바로 출금을 진행할 수 있을것이다. 그들은 얼굴 한번 붉히지 않은채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보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들이 모든 손실을 떠안을 것이라고 보장한다. 당신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은행의 주주들, 채권자들, 정부, "안정화 기금" 등등, 다양하다. 주머니가 깊숙한 사람들이 우리 은행을 보장해주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누가 손실을 떠안을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은 당신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은행은 이것을 또 모두에게 말한다. 얼굴 한번 붉히지 않은 채.
만약 누가 얼마만큼의 손해를 떠안는지 매우 투명하게 공개 되었다면, 은행 시스템들은 그들의 존재 의의인 위험 회피성 자본을 끌어모아 위험한 프로젝트들에 투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메이저 은행에 투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안전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는 가장 먼저 위험부담을 떠앉는 주주들조차 일정 부분 보호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은행을 망하게 내버려 두겠어? 은행들은 혁신하고 연결하며 스왑, 재보험하고, 헷지하며 보증한다. 그들이 이러는 목적은 결국 누가 손해를 보게될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투자하는 사람들 모두가 본인 대신에 손해를 볼 대상 한명을 떠올릴 수 있게끔 하면서 나는 손해를 보지 않을것이라고 믿게 만드는것이다.
은행들의 불투명성과 연결성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은행들과 군주들은 항상 섞어왔다. 연방 예금보험이 있기도 전에 사립 예금 보험들이 존재해 왔으며 (모노라인), 이들은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겨져 왔다. "쉐도우 뱅크"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그저 개체들과 보증들을 새롭게 분류하는 언어일 뿐이다. 그래야만 아무도 자기자신이 손해를 볼 위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은행 비즈니스다. 불투명성은 개혁으로 없어질 수 있는것이 아닌데, 이는 불투명성 그 자체가 은행들의 경제적 기능인 "모든 정보에 대해 알았다면 리스크를 지지 않았을 사람들에게 리스크를 지게 만드는 것"을 행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불투명하고 약간의 사기성이 내재된 금융 시스템이 없는 사회들은 결국 발전하고 번영하지 못한다. 성장과 개발을 지속 시킬만큼 충분한 경제적 위험을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불투명성과 발전된 경제를 가지거나, 투명성을 가지고 양 떼를 몰면 된다.
불투명성의 부작용은 금융 게임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들로부터 도둑질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그 자체를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비용은 낼 수 있다. 아닌가?
Nick Rowe는 금융을 마법에 비유했다. 내가 선택할 단어는 '플라시보'이다. 금융 시스템은 우리가 더 큰 경제적 리스크를 공동적으로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설탕약이다. 모든 효과적인 플라시보가 그렇듯이, 우리는 이것이 그저 설탕 조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머리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과학 기술로 이루어진 알약을 먹는다고 믿어야 한다. 금융 플라시보 행상인들이 우리를 그렇게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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