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누가 행정을 맡았는지에 관계 없이 미국의 부채는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신뢰도 높은 국가의 부채 증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산 가치가 이자 비용보다 더 상승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부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3년 전인 2021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부채 한도 유예: 머리 아픈 문제는 뒤로 미루자
2021년 12월 16일, 의회는 부채 한도를 31조 3,800억 달러로 상향했습니다. 부채 한도는 법안에 따라 재무부가 특정 금액 이상의 부채를 발행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조치입니다.
그러나 이 한도는 2023년 1월 19일부로 초과됩니다. 미국의 총 부채가 이를 넘어섰다는 것이죠.
앞서 언급했듯 부채의 규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자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한도가 초과되던 당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한도 초과 후 시행한 비상 조치로 6월 1일까지는 국가의 채무 상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습니다.
재닛 옐런이 언급했던 6월까지 한 달을 남긴 2023년 5월, 공화당과 민주당은 2025년 1월 1일까지 부채 한도를 유예하기로 합의하게 됩니다.
부채 한도를 유예한다는 것은 디폴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함입니다.
기존 세수나 예산이 고갈되고 추가 차입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디폴트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부채 한도를 유예하면 추가 차입이 가능해져 디폴트를 맞이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스스로 유예하는 것은 미국이기 때문에, 즉 기축통화국이자 미국채가 가지는 신뢰성 등의 이유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요점은 '미국채가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됩니다.
"미국이 돈을 갚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당연히 갚을 수 있다"라는 답변이 나와야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부채 현황: 미국, 너 돈 갚을 수 있어?
유예한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 미국의 부채 현황은 어떤가요?
필자가 봤을 때 현재 미국의 부채 문제는 한계치에 가깝다는 의견입니다. 당장 내일 모레 이게 터져서 금융 위기가 온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료에 보이는 "Federal Outlays: Interest"는 미국 연방 정부가 지출하는 예산 중 부채의 이자 상환 비용을 의미합니다. 상환 비용의 증가세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부채의 규모보다 이자 상환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 기억나시죠? 상환 비용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적 압박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최근 몇 년 간 금리가 인상되면서 미국은 더 높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고, 이에 따라 이자 지출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한화 약 500조 원이었던 이자 지출은 현재 연간 1,200조 원 이상으로 급증하며, 이자 지출이 정부의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미국이 현재 국방비에 사용하는 지출과 맞먹는 수치입니다.
이자 지출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주요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경제 성장률을 낮추게 됩니다. 문제를 길게 끌수록 안 좋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정부가 나몰라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023년 5월 부채 한도 유예 내용이 포함되어있는 "2023 재정책임법(Fiscal Responsibility Act of 2023)"의 주요 내용들을 확인해보면:
공화당 강경파 측에서 요구한 지출 삭감이나 정책 조정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을 제기하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보인 모습입니다.
의회 예산처는 이 법안을 통해 10년간 약 $1조5000억의 정부 부채가 감축될 것이라 추산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단기채는 10년 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자 부담을 다른 국가들로 분산 시키거나 세수를 더 걷는 등 부채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2022년, 고금리 시절부터 시작된 미국 정부의 급격한 단기채 발행 확대는 미국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입니다.
2024년 6월 기준 단기채는 전체 시장성 부채의 약 2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학자금 대출은 연장이 막혔고, 신용카드 연체율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자료에서는 "회수가 불가능한 채권에서 발생한 손실"을 의미하는 Net Charge-off(NCO, 대손상각률)이 4.73 으로 상승한 모습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초반 수치인 4.70을 이미 넘어 선 모습입니다.
은행주들 실적 좋던데 문제 있나요?
맞습니다. 미국 은행주들의 3Q 실적 발표는 강한 주가 상승을 견인했습니다. 이는 3Q NII (순이자이익)의 반등이 직전 '금리 인하에 의한 NII 감소 우려'를 완화 시켰기 때문입니다.
NCO의 상승은 리스크 측면에서 부정적인 지표고, NII 증가는 수익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지표입니다. 즉 이 두 가지 지표의 균형을 잘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결국 NCO를 해결하지 못하면 은행의 이익은 지속적으로 상쇄될 것입니다.
은행의 이익이 상쇄되어 감소하기에 이르면 은행은 대출 확대보다 신용 리스크를 회피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대출 안 해준다고요.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소비와 투자는 감소하고 신용 긴축 이슈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부도 정부 나름대로 단기 대출 상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우선 민간 부채가 해결될 때 까지는 부채한도 협상이 잘 이루어져야겠습니다.
부채한도 협상이 제대로 안된다면?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미국 국가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을 때를 기억해보면 됩니다.
2011년 8월 5일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하나인 S&P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사상 최초로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 시켰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미국 정부 부채가 $14조 5,800억으로 2010년 미국의 명목 GDP 규모를 초과
- 미국 정부가 국가 부채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내놓지 못함
-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이 향후 재정 정책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
그 전후로 미국의 부채 문제는 지속적으로 언급되어왔던 이슈였고, 7, 8월 두 달 동안 S&P500은 -16%, 나스닥은 -17%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워렌 버핏의 주식 매각, 미국 재정과 관련 있다?
"정부는 우리의 수익 일부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언제든 세율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세율은 21%이지만, 재정 적자 문제가 계속된다면 이는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워렌 버핏, 애플 매각 이후
워렌 버핏이 애플을 매각한 이후 언급한 "재정 적자"가 계속 귓가에 맴도는 요즘입니다.
혹자는 버핏의 결정이 잘못 된 경우가 많다며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시세 차익을 기준으로 한 생각입니다.
워렌 버핏은 마켓 타이밍을 고려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투자를 본인의 사업이라 생각하며 기업 자체의 가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이에 따라 워렌 버핏의 발언을 다시 되뇌어 보면:
워렌 버핏은 어쩌면 미국의 부채 문제가 조만간 도래할 위기가 아닌, 구조적으로 개선 시키기 위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 장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구조적으로 개선되기까지 기업들의 수익성이 제한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버핏의 매각은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입니다.
버핏이 제시한 '미국이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율을 인상할 수 있다'는 우려는 공화당인 트럼프가 당선됨에 따라 잠시 접어둘 수 있겠지만, 이는 국외로의 부담 분산이나 예산 조정 등 다른 방안으로 전환될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돌고 돌아 간접적인 형태로 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주식 시장에서는 '진짜 강자'만 남게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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