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의 총합을 현재 가치로 할인한 값으로 결정된다. 초기 아마존처럼 현금 유입/유출 시점의 차이를 이용해 영업적자를 보면서도 잉여현금흐름은 + 인 경우도 있지만, 회사가 계속 커지다 보면 매출 성장률이 사업을 영위하는 국가의 GDP 성장률을 뛰어넘지 못한다. 따라서 기업의 영구가치 평가를 할 때 GDP 성장률을 terminal growth rate(영구 성장률)로 설정한다. 때문에 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반복 가능한 매출과 이에 비례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게 제일 중요하고, 우선되야 한다.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떠한가?
사업을 시작하려면 그 형태가 현물이던 현금이던 자본의 출자가 필요한데,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주체가 VC(벤처캐피탈)라 할 수 있다. VC들은 각종 연기금, 고액자산가 등의 LP들로부터 자금을 일정기간 동안 위탁받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역할을 한다. 이론적으로 이들은 펀드 운용기간 동안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자금을 대고 성장하는 과정의 투자 단계(시리즈 A, B, C 등)에서 다른 투자자에게 구주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엑싯을 하거나 M&A, IPO 등의 이벤트를 통해 투자금을 환수한다. 한국 대기업들은 M&A에 보수적이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관계로 유형자산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사실상 IPO가 VC들의 최종 엑싯 여부를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VC들의 주요 LP 중 하나는 대한민국 정부이고 한국모태펀드에서 출자 해주는 조건으로 꼬리표를 달기 때문에(플랫폼, 소부장, 메타버스 등) 매년 투자가 집중되는 분야가 달라진다. VC들은 비교적 짧은 운용기간(주로 7년)내에 투자금을 환수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라운드 투자 받기가 쉽거나 IPO할 확률이 높은 테마의 기업에 주로 투자하며, 창업자들은 당장 투자를 받기위해 자신과 팀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가 아닌 그 해 떠오르는 테마에 속해있는 사업 아이템을 선택한다. 그 중에서 시리즈 C 이상 단계까지 살아남은 대형 스타트업들은 이제 IPO 작업에 임해야 되기 때문에 무슨수를 쓰더라도 매출을 만들어오라는 VC들의 압력에 직면한다. 대한민국 1위 성인교육 회사를 표방, 곧 IPO 수요예측을 앞두고 있는 데이원컴퍼니는 교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에어팟 프로를 끼워팔거나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엔비디아 GPU를 미끼 상품으로 내걸고 있다. 이는 대표적인 예시일 뿐 대부분의 우리나라 스타트업에서는 본업이라 주장하는 영역외에서 매출을 창출하기 위한 영업을 하고 있으며 2021-2022년 과잉투자 시기에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다 이후 투자유치 실패로 인해 자금난에 처하거나 망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해서 IPO에 성공한 스타트업들은 창업부터 상장까지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데 집중하지 않고 외형을 늘리는 일만 해왔기 때문에 경기 상황에 따른 매출의 변동성도 높고 비용을 통제하는 방법도 모른다. 우리나라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이 유난히 소수 지분만을 가진 오너가 친화적인 거버넌스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지난 수년간 상장된 스타트업들 중에 과연 해당 기업만의 경제적 해자가 있는곳들이 얼마나 되는지가 의문이다. 지난해 기술특례로 상장한 ‘파두‘의 경우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 받은 결과로 상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뛰어난 기술은 가시적인 매출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매출액이 커지면서 영업적자가 동시에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상장된 선배 스타트업들이 시장에서 신뢰를 잃어가는 동안 나라의 신규 성장 동력으로 지목받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고, 올해의 테마는 생성형 AI이기 때문에 전례없는 속도로 AI 전문가들과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대표들은 어느 순간부터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창업자 네트워킹 이벤트, 모임, PR, 조직문화 홍보 등 스타트업 놀이에 빠져 투자금을 소진한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투자를 받은 핵심 비결이기 때문이다. 투자금이 입금된 후 그들은 뛰어난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사무실부터 강남이나 종로의 뷰가 좋은 고층 빌딩으로 옮기고, 시장대비 높은 연봉을 주고 채용을 한다. ‘높은 인재 밀집도’가 마법처럼 사업의 핵심 문제를 해결해주고 매출을 일으키며 상장까지 가는 비결이라고 VC들과 이미 상장한 선배 창업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산업 생태계 참여자들이 현실을 직시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시장에 눈 먼 자금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장은 점점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고, 눈먼 돈의 큰 축을 차지했던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미국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상장이나 엑싯에 성공한 선배 창업자들은 말로만 “pay it forward” 하지 말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시장의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 생태계 조성자인 정부와 국내 VC들은 기형적이며 비효율적인 스타트업 금융 구조를 개선하고 창업자들이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창업자들은 환경이 어떻든 탓하지 말고 사업적, 재무적, 그리고 고객 중심적인 마인드를 키우고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모든 참여자들의 뼈를 깎는 근본적인 변화만이 우리가 공존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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