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누구인가
세상에는 수 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문직'으로 부르는 직업군 중 대표적으로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이 있다. 이들 직업군의 공통점은 바로 국가에서 정한 교육 과정을 거쳐 국가에서 만든 정규 시험을 통과해야 자격증이 주어진다.
전문직 자격증을 국가 단위에서 관리하는 것에는 우리 생활에 밀접한 의료, 법률, 회계 서비스의 질을 유지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대를 거쳐 국가시험을 통과한 의사이더라도 오진단 하는 이른바 '돌팔이' 의사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우리 생명을 좌우하는 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인지라 상당히 많은 여과 장치를 거쳐 자격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의대 증원 2,000명을 반대하는 이유도 이것과 연관이 있지만, 그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하겠다.
금융이나 투자 전문가는 얘기가 약간 다르다. 금융은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투자를 통한 자원 분배 기능을 하는데, 대부분의 금융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투자자산운용사나 CFA 등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금융 감독 기관은 투자자문사나 자산운용사 같은 금융사 설립을 위해 투자자산운용사와 준법감시인 등의 최소 자격인원 조건만을 제시하지 실제 투자를 집행하는 인력들은 자격증 취득이 필수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정부가 공인한 사람만 금융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 또한 상당히 어색한 상황일 것이다. 그동안 '금융 전문가' 혹은 '투자 전문가'는 해당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되는것(예컨대, 증권사에서 오랫동안 도제식 기업 분석 교육을 받은 애널리스트)이라 생각하면 되었는데, 대통령 선거가 그랬듯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의 급격한 발전으로 정말 그 타이틀이 어울리는 사람보단 "대중들이 생각하기에 전문가"면 해당 분야의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는 환경으로 변화된 것이 2020년대의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판단할 수 있을까?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의 제목은 전직 펀드 매니저 이효석아카데미 대표 이효석의 저서 '나는 당신이 주식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를 패러디 한 것이다.
주식과 관련된 투자를 할 때 흔히 S&P 500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나 ETF를 추천하는 이유로 대부분의 펀드 매니저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일부 펀드 매니저들이 억울해 할 대목인데, 펀드라고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목표로 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헤지펀드는 '노아의 방주' 컨셉을 차용해 평상시에는 꾸준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만, 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증가하거나 폭락할 때 큰 폭의 수익률을 기록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여러 펀드에 투자하는 기관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위기에 대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융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자산운용사 펀드 매니저가 운용하는 펀드를 가입하기 보다 자신의 나이, 소득 및 자산규모, 위험감내 성향등을 고려해 S&P500 지수 추종 ETF와 미국 국채에 비중을 달리 투자하는것이 생애 수익률을 높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유명한 금융 전문가들은 유튜브 채널이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각종 강의 플랫폼 등을 통해 투자 또한 공부하면 승률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영역이라 주장하며 자신의 콘텐츠와 강의 혹은 금융 상품을 판매한다. 물론 많은 금융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행동을 하는것이라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수년간 소개받은 몇몇 금융 전문가들을 만나본 결과 대부분의 이들은 오히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편이었다. 이 중 한명은 나름 잘 알려진 미국 주식 리서치 법인의 이사로 재직중이고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대형 증권사 출신의 커리어를 밟아온 사람인데, 2022년 반도체 겨울이 다가오기 직전인 당시 반도체 섹터에 비관적이었던 나에게 "반도체는 더 이상 씨클리컬한 산업이 아니다"며 반도체 최선호주로 '인텔'을 자신있게 제시했었다 (그는 자신이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라고 강조했음을 첨언한다).
또 다른 예시로 AI 알고리즘을 통해 자산을 운용한다고 주장하는 AUM 2,070억원 규모의(회사 홈페이지 기준) '두물머리투자자문'의 대표 이승규는 최근 자신의 뉴스레터 '담배꽁초 투자법 그게 돈이 됩니까?'에서 가장 저평가된 PBR주(시가총액이 자산가치대비 저렴한 주식) 그룹에 장기투자 할 경우 고평가 된 그룹대비 훨씬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난 30년간 저 PBR 혹은 저 PER 같은 단순한 평가지표를 기반으로 기계적으로 투자하는 '가치투자'는 사실상 종말했던 것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상당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아직까지 미국 주식시장에서 저 PER/저 PBR을 기반으로 한 '기계적' 가치투자 기법이 죽지 않았다는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저PBR 그룹이 2007년부터 연 평균 12% 상승률을 보였다는건 믿기 힘들다.
이승규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주식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 했는지 모르기에 단정할 수 없지만, 퀀트 투자에서 백테스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생존 편향'을 제거하지 않았기에 이런 말도 안되는(?) 결론이 나온것으로 보인다.
위는 생존 편향을 설명하기 위해 매번 등장하는 매우 유명한 그림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기 중 총격을 받고도 무사 귀환한 전투기 모형이다. 미군은 무사 귀환한 전투기의 총격 부위를 빨간색 점으로 표시하고 해당 부위에 보강을 실시했으나, 놀랍게도 전투에서 무사 귀환하는 전투기의 비율은 별 다른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빨간색 부위는 총격을 맞아도 전투기의 운항에 큰 지장이 없는 부위였기 때문에 귀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퀀트 투자의 백테스팅도 똑같다. 현재 시점에서 존재하는 상장 주식을 대상으로 통계적 분석을 진행할 경우 그 사이 상장폐지된 주식은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장 PBR이 낮은 주식은 회사의 장부 자산가치 대비 시가총액이 저렴한 걸 뜻하는데, 이는 (1) 성장을 전혀 하지 못하거나 (2) 회사의 현금흐름 창출 능력에 문제가 있어 존속 가능성에 의심이 되는 경우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극단적으로 싸게 거래되는 저 PBR 주식이 (1) 성장세로 돌아서거나 (2) 회사의 존속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매우 큰 리스크가 해결 되는것이기 때문에 주가가 크게 상승할 확률이 높다. (1)과 (2)에 해당하면서 지금껏 살아남은 회사들만 모아놓은 집단의 경우에는 주가 상승률이 매우 높을것이다. 거래소에서 상장폐지 되거나 아예 회사가 파산해 주식가치가 없어진 기업들의 주식까지 포함할 경우 수익률은 훨씬 낮아질 것이다.
위 그림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승규 대표가 '생존 편향'을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저 PBR 주식을 사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저 PBR 그룹은 거래량, 즉 유동성이 극단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어떤 금융 상품의 유동성이 낮다는 말은 내 주식이 '시장 가격'에 거래될 확률이 낮다는 말과도 똑같고, 따라서 거래를 하기위해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고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거래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며, 당연히 실제로 주식을 사고팔아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분기별로 리밸런싱 할 때 수익률을 낮추고 거래 리스크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저 PBR 주식 집단이 '생존 편향'을 제거한 후에 시장대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더라도 그 초과수익의 몇 퍼센트가 낮은 유동성에 대한 '보상'인지 정확히 계산 해야한다.
투자금 100억원이 넘는 슈퍼개미를 제외한 그 어떤 개인투자자도 '유동성 디스카운트 혹은 프리미엄'을 염두에 두고 거래하고 있지 않았는데, 사실 일반적인 개인이 투자를 하는 규모에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개념을 아는 경우가 애초에 거의 없다. 그리고 나는 이게 잘못된 현상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을 뿐이다:
- 수많은 유튜브 채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채널 중 어떤 사람이 '진짜 전문가'인지 당신이 판단할 수 있을까?
- 금융권 커리어의 투자 전문가도 헛발질을 하는데, 당신이 '학습해서' 지수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것보다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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