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크립토라는 이름의 고아 소년이 있었다. 그는 작은 마을 외곽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홀로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느리고, 이상하고, 쓸모없는 아이라고 부르며 멀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토시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크립토를 찾아왔다. 사토시는 오래된 예언을 전해주었는데, 크립토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황금시대를 열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그 운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바로 '공주 사용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크립토의 사명이었다.
크립토가 무어라 묻기도 전에 사토시는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크립토는 여정을 떠났다.
그는 공주를 찾아 온 땅을 돌아다녔다. 마을마다 장터에 가서 소문을 물었지만, 상인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학자들에게도 물었으나, 그 누구도 책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공주 사용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크립토는 온 마을과 작은 촌락까지 뒤졌지만, 아무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녀의 모습을 전혀 모른 채,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면서도, 그의 가슴은 공주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공주 없이는 결코 온전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공주는 그의 운명이었다.
수년이 흘렀고, 크립토는 계속해서 공주를 찾았다. 그는 길가에서 자주 보이는 떠돌이 순례자가 되었다. 어떤 이는 그를 미쳤다고 했지만, 그의 맑은 마음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주막마다 음유시인들은 “신실한 방랑자와 잃어버린 공주”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번잡한 갈림길에서 한 상인이 크립토를 쫓아와 조금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곧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르며, 크립토는 어느새 순례자 무리의 맨 앞에 서게 되었다. 마을에 도착할 때마다 더 많은 이들이 합류했고, 모두가 공주 사용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모였다. 무리 속에선 온갖 전설이 떠돌았다. 그녀는 만개한 장미보다 더 아름답고, 그녀의 손길은 어떤 병도 낫게 하며, 그녀가 돌리는 마법 물레는 밀짚을 금으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날이 갈수록 크립토를 따르는 사람이 늘었다. 농부들은 들판을 떠나고, 목동들은 양 떼를 버렸으며, 대장장이들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들은 그런 것들이 이제 필요 없다고 믿었다. 공주를 찾고 나면 풍족한 황금시대가 펼쳐지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크립토는 소식을 접했다. “공주가 왕궁의 가장 높은 탑에 갇혀 있다”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은 공주의 눈부신 미모가 자만심 강한 '화폐 왕비'의 질투를 샀다고 했다. 크립토는 그제야 왜 공주를 찾기 어려웠는지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화폐 왕비의 음모였다. 그녀는 공주를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숨겨버린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찬 크립토는 군중을 이끌고 성으로 향했다. 새벽이 되자 공격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른 치열한 전투 끝에 왕실 근위병은 무너졌고, 화폐 왕비는 왕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크립토는 나선형 계단을 정신없이 달려 꼭대기 층으로 올랐다. 문을 활짝 열었을 때, 그는 텅 빈 방을 보았다. 그곳에는 공주 사용처가 없었다. 그녀는 애초에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립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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