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lpha model of Theseus | Acadian Asset Management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부티크 헤지펀드인 Acadian Asset Management의 수석부사장이자 포트폴리오 매니저 오웬 라몬트(Owen Lamon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선택하는 존재다. 즐겨 듣는 재생목록을 틀어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음악을 들어볼까? 지금 쓰는 휴대폰을 계속 쓸까, 아니면 최신 모델로 바꿔야 할까?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대체로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느리게 반응한다. 이는 행동재무학의 여러 이론에서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워렌 버핏은 몇 가지 간단한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며 큰 성공을 거뒀고, 아마도 그는 새로운 음악을 자주 들을 것 같지도 않다.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건, 선택에 여러 사람이 얽힐 때다. 어떤 제품을 구매할 때, 우리는 어제의 제품과 오늘의 제품이 동일하길 기대한다. 1985년 뉴 코카콜라(New Coke)가 출시됐을 때 소비자들이 분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도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우리에게 강제로 떠안기는 불쾌한 업데이트, 서툰 리디자인, 멍청한 리브랜딩에 매번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의사결정 이론에 따르면 이런 세상에서 최적의 대응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믿음과 전략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여기서 시스템적 투자(Systematic Investment)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당신이 XYZ라는 시스템적 주식 운용사를 2005~2025년의 트랙레코드를 보고 자금을 맡기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알고 보니 XYZ는 그 기간 내내 알파 모델을 지속적으로 수정해왔고, 2025년 모델은 2024년 모델과 95%만 겹치며, 2005년 모델과는 겨우 36%만 겹친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이러한 변화가 뉴 코카콜라처럼 불쾌하고 불필요한 개입처럼 느껴지는가? XYZ의 성과 기록 전체가 의미 없는것처럼 느껴지는가? 워렌 버핏은 전략을 바꾸지 않는데, 왜 XYZ는 자꾸 모델을 바꾸는가? 2005년 모델이 형편없었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나는 그렇게 반응하는 건 잘못이라고 본다. 우선 트랙레코드에 대해 말해보자. 맞다, XYZ의 지난 20년간의 실제 성과는 현재 쓰지 않는 모델들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따라서 오늘날의 모델이 과거의 실적을 온전히 반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XYZ의 실적은 (a) 우연한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고, (b) 미래 성과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c) XYZ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더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당신은 단지 과거 실적만 보고 XYZ를 선택해서는 안 되며, 마찬가지로 2025년 모델을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만 보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시스템적 운용사에 투자할 때 투자하는 대상은 하나의 ‘모델’이 아니라, 특정한 ‘연구팀’과 그들이 운영하는 ‘연구 프로세스’다. 이 프로세스는 새로운 신호를 평가하고, 기존 신호를 모니터링하며, 시장 조건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포함한다. 앞으로 XYZ의 성과는 이 팀이 이 프로세스를 통해 내리는 의사결정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당신의 투자 대상은 결국 이 프로세스가 된다.

과학이란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계속 업데이트해 나가는 과정이다. 알파 모델이 얼마나 ‘안정적’이어야 할지, 아니면 얼마나 ‘적응적’이어야 할지는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알파 모델을 아예 업데이트하지 않는 것이 최적의 선택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혼다 시빅은 1972년에 처음 출시됐다. 지금 시빅을 사야 한다면 1972년형보다는 2025년형을 추천하겠다. 혼다는 매년 새로운 기술을 반영해 차를 개선해 왔다. 물론 2012년형처럼 업데이트가 망한 경우도 있지만(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 1972년부터 지금까지 차 디자인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면 그건 최악의 선택이다. 70년대 차는 오늘날의 차에 비하면 고장 잘 나고 안전하지도 않다.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는 ‘정체성과 영속성’을 주제로 한 고대의 철학적 역설이다. 배의 부품을 매년 조금씩 바꾼다면, 어느 시점에서 그 배는 완전히 새로운 배가 되는 걸까? 2천 년 전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썼다:

“그들은 낡은 판자를 하나씩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롭고 튼튼한 나무를 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생물의 변화에 대한 논리적 논쟁의 상징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 배가 여전히 동일한 배라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그것은 더 이상 같은 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역설은 의미가 없다. 썩은 판자로 물이 새는 배와 새롭고 튼튼한 판자로 유지보수된 배, 당신이라면 어느 배에 타겠는가? 나는 당연히 후자를 고르겠다.

나중에 만든 배가 예전 것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해도 그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다. 지속적인 업데이트는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다. 물론 업데이트의 속도가 항상 빠를수록 좋은 건 아니다. 매년 모든 판자를 전부 교체하는 건 비용만 많이 들고 실익은 없다.

더 일반적으로는, 정보가 시끄럽고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새로운 증거가 쌓일 때마다 모델을 천천히 업데이트하는 것이 보통 최적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모델의 세대 간 유사도는 0%도 아니고 100%도 아닌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삶에는 변치 않는 충성과 단호한 의지가 아름다운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할 때는 그렇다. 하지만 내가 충성하는 대상은 ‘팀’이지, ‘1978년의 레드삭스 선수 명단’이 아니다. 물론 78년 팀은 내 마음속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매년 선수단의 약 25%가 바뀐다.

테세우스의 배는 규칙적인 예방 정비를 단호하게 요구하고, 퀀트(quantitative) 투자 전략은 철저한 연구 프로세스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배를 사랑하라, 판자를 사랑하지 말고. 모델이 아니라, 그 모델을 만들어낸 ‘연구 프로세스’를 사랑하라.


테세우스의 배처럼 판자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교체한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 배는 처음과 동일한 배가 맞는지에 대한 논의를 할 수 밖에 없다. 판자 하나를 설계대로 교체하더라도, 처음에 사용되었던 판자와 똑같은 나무를 동일한 공정을 통해 생산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무 품종이 똑같더라도,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그 특성이 미묘하게 다를 수 있고, 동일한 공정이어도 공정에 사용된 장비가 노후화 되었거나 교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의 몸도 그렇다. 매순간 우리를 구성하는 세포는 죽어나가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DNA라는 설계도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늙고)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포는 기존의 세포와 조금씩 다른 부분이 생긴다. DNA 자체가 자외선, 담배 연기 등 외부 요인과 세포 자체의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화물이나 알칼리성 화합물에 의해서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대략 7년 정도가 지나면 우리 몸에 있는 대부분의 세포들은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고 한다(뇌 세포는 재생성되지 않는다).

중력은 '힘'이 아니다

지구의 중력(gravity)은 9.807 m/s²의 힘으로 우리를 끌어 당기지만, 중력 그 자체의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다고 관찰 되었다. 중력으로 지구를 끌어당겨 궤도안에 돌도록 하는 태양이 지금 당장 사라지더라도 지구가 태양의 궤도를 벗어나는 시점은 8분 20초 이후이며, 우리는 그때가 되어서야 태양이 사라진 걸 알게 된다는 뜻이다. 중력이 속도가 있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말인가?

중력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기원전부터 있었지만, 17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아이작 뉴턴이 만류인력의 법칙을 정리하면서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기술했고 이 현상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냈기에 현대까지 물리, 특히 기초 수준의 물리는 중력을 물질간에 작용하는 '힘'으로 가르치는게 통상적이다.

문제는 20세기 들어 아인슈타인이라는 천재 과학자가 일반 상대성이론을 들고 나오면서 생겼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연결되어있고(시공간), 따라서 공간과 시간은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다. 이론에 의하면 물질(matter)은 시공간(spacetime)이 얼마나 꺾여야 하는지 알려주며, 꺾인 시공간은 다시 물질에게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후 해당 현상은 추후 과학자들로부터 여러번 관측되며 검증되었다. 우리는 중력을 시공간의 일부를 설명하는 단어로 사용하지 않고 '힘'이라 표현하고 있지만, 중력 또한 시공간에 해당하며, 보다 정확히는 시공간의 휘어짐을 표현하는 정도인 것이다.

과학의 기원, 철학

고대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4원소설 – 우주가 불, 흙, 공기, 물 네개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주장 –을 받아들이고 전파하였으며, 이는 대체로 17세기까지 큰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여졌다.

고대에는 학문간의 깊이가 지금보다 얕았기에 철학자들이 수학자, 과학자, 물리학자 등을 겸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모든 학문의 기초는 철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는 철학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세상의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판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옳고 그름을 탐구하고 판별하려면 (1) 가설을 세우고 (2) 검증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현상부터 설명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물질의 기본 요소가 무엇인지, 또 그들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가설을 세워야 했다. 때문에 오늘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하면 그 사람에게 "Doctor of Philosophy" 혹은 줄여서 Phd 라는 약어를 사용하는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결국 철학을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투자도 워렌 버핏처럼 몇 가지 일관된 원칙을 오랫동안 지키며 할 수 있고, 라몬트의 시스템적 투자처럼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모델을 그에 맞게 수정할 수 있다.

단 한가지 절대적 진실이 있다면 우리가 관찰하는 이 세상은 '현실'을 어느정도 반영한 '근사치'라는 것이고, 내일이 되면 기존의 법칙은 그 근사치를 일부분만 설명할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