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륜수의 노트

2026년 02월 28일

법대로 하자는 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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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륜수

Book lot on black wooden sh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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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256억 포기 선언…”방시혁, 분쟁 끝내고 창작 자리에서 만나자”(종합)
[N현장] 25일 기자회견…5분여간 입장문 읽은 뒤 질의응답 없이 퇴장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이자 현 오케이 레코즈 대표가 하이브(352820)에게 풋옵션과 관련한 256억 원을 받지 않을테니 모든 법적 분쟁을 종결하자고 공개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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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 김민지 기자

민희진이 하이브(주)를 상대로 제기한 어도어 풋옵션 계약 미이행 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 공개적으로 방시혁 의장에게 배상액인 256억원을 포기할테니 뉴진스와 관련된 모든 법적 공방을 멈추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페이스북에 "이 제안을 받아주면 결국 민희진이 대인배로 끝나는 엔딩이라 거절할거라 예상"한다고 적었고, 이 견해를 유지한다.

소송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 일부는 "법대로 해야한다"나 "계약서가 장난이냐"는 주장을 견지하기도 하는데, 이들이 과연 법에 깊은 조예를 가졌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당사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계약 서류를 어떻게 상세히 읽어봤는지 의문이다. 또 "하이브가 뉴진스와 관련해 제기한 여러 소송들의 요구 배상액 총합이 400억대이니 민희진이 이득이다"는 주장은 그 생각이 너무나도 단순해서 반박할 의미조차 못느꼈는데,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수도 있으니 설명하자면: 1심 판결이 확정된 256억의 배상액과, 현 시점에서 하이브(주)의 소장에만 존재하는 배상 요구액의 무게는 당연히 큰 차이가 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법대로 하는것"의 의미를 탐구해본다. 본인은 비전문가이고,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오며 법에 관련해 개발해온 생각들을 공유한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법대로 하는것

어린 시절 나를 거쳐갔던 여러 장래희망 중 하나는 변호사였다. 아마도 청소년기 초입이었던 것 같은데, 법전의 조항들을 하나씩 조목조목 읊어가며 칼로 무자르듯이 법정에서 상대방의 논리를 격파하는 통쾌한 모습을 종종 상상했던것 같다. 한참이 지나 유명 드라마 'Suits'를 시청한 뒤 깨달은 문제는 법전의 조항들이 반도체 전기회로처럼 0과 1로 구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반도체 전기회로조차 회선 피치가 줄어들며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하기에 생기는 비유 자체의 문제점은 뒤로하고, 법전이 0과 1로 구성된다면 매우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는 '의도된 유연성'이라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자동차가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20년대의 미국 국회에서 자동차 법에 시속 3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는 생산하지 못하는 법을 제정했다고 가정하자. 그 이유로는 당시 도로 인프라가 그 정도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을수도 있고, 안전기술의 부재로 시속 30km 이상에서 차대차 사고가 나면 탑승자가 사망했을수도 있다. 문제는 영국에서 진보된 안전기술이 장착된 시속 60km를 달리는 자동차가 수입되면서 생긴다. 입법의 취지는 단순히 탑승자 안전을 위한것이었지만, 되려 30km 이상을 달리는 자동차 생산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미국 제조사들은 더 높은 속도에서도 안전을 담보하는 신기술 개발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해당 규제가 없었던 영국 제조사들이 빠르게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잠식하게 된다. 법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정에 나서더라도 행정적인 절차가 존재하고 대응을 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모델을 출시할 시점에는 이미 미국 자동차 업계는 파산했을수도 있다. 이때 한 자동차 스타트업이 동일한 안전기술을 탑재한 모델을 생산한다면, 법을 어긴것일까? 표면적인 조항을 어긴것이어도, 법안의 '의도'에는 부합하기에 집행되지 않을것이다. 이해하기 쉬운 예시로 가정했지만, 오늘날 대부분 선진국들의 법 시스템이 실제로 비슷하게 돌아간다.

트럼프가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을 포함해서 부과한 대규모 관세는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미국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기에 무효라 결론지어졌고, 이미 수백억 달러의 관세를 납부한 기업들은 IRS에 반환소송을 준비중이다. 트럼프가 의회 동의없이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한 법안은 1977년 제정된 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IEEPA)로, 대통령에게 국외에서 촉발된 국가적 비상사태에서 무역 활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대법원장 John Roberts는 트럼프가 "모든 국가의 모든 품목에 대한 관세를 기간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설정할 권리로 남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IEEPA는 '비상사태'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지만, "A 국가가 주로 첨단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99.99% 농도의 B 물질의 대미국 수출을 통제할 경우"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고, 그랬을 경우 입법 의미조차 없었을 것이다. 약 1년간 세계 무역의 판도를 어지럽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피곤하게 만들었던 트럼프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법의 '의도된 유연성'은 이렇게 종종 역기능으로 작동한다.

서비스형 신뢰

현대 사회에서 법의 근원적 기능은 대체로 역 인센티브를 통한 사회적 신뢰의 유지라 생각된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시스템은 당장의 구경꾼들에게 통쾌감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동일한 내용의 가해할 권리를 부여하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의 가해 총합을 증진하고 일부 정당화 하는 구조다.

혹자는 법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법 시스템이 작동하고 변화하는 방식은 국민적 정서와 사회 분위기에 매우 의존적이다. 선출된 입법가들은 투표하는 이들의 입맛에 맞는 법안을 제정하는 사람들이지,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이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떼법'이라는 용어로 이런 현상을 비판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전 덕분에 옳고 그름이 매우 주관적임이 선명히 드러난 상황에서 현대사회의 법 시스템이 선과 악을 판별하고 있다거나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순진하게 다가온다. 나 또한 의견이 있는 사람이기에 이런 경향성의 존재가 이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만, 현실이 그러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

법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같은 행위들이 없어질 수 없다. 사람마다 사람이 할 수 있는짓에 대한 정의가 다른것도 있지만, 역 인센티브가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 억만장자에게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는것이 엄청난 효용을 준다면 범칙금 10만원은 푼돈일테고,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되는게 두렵거나 체감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행위에 대한 역 인센티브에 반응하고, 만약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경우 법이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기에 큰 걱정없이 스타벅스 탁상 위에 노트북을 놓은채 자리를 비우고, 수십억대에 달하는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진다. 금융 시스템의 중앙은행이 그러하듯이, 법 시스템은 결국 집단적 신뢰의 최종 보증인으로서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

법대로 한다는 것

처음으로 돌아가서 "법대로 해야한다"는 주장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를 되묻고 싶다. 하이브(주)가 민희진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회사가 80%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이자 걸그룹 뉴진스의 소속사인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정황을 근거로 한다. 소송이 제기된 당시 어도어의 대표이사는 민희진이었다. 민희진이 이미 경영자인 상황에서 본인인 민희진으로부터 경영권을 탈취한다는건 정부에서 민희진에게 이중인격을 부여하지 않는이상 불가능하고, 사내이사를 선임하고 해임할 권리는 80% 지분을 가진 대주주인 하이브가 갖기에 어도어의 경영권은 민희진이 탈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뿐더러, 그럴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이후 하이브는 민희진이 뉴진스를 몰래 독립시키려 했다는 의혹 제기를 배임 행위라는 표현으로 변경한다. 증거가 있을 경우 민희진이 어도어의 대표이사로서 법인에 손해를 끼치는 계획을 한 셈이니 논리적으로는 더 완전한 주장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배임 행위의 실체가 없었고, 사담에서 계속되는 갈등으로 인해 뉴진스를 데리고 나가는것에 대해 거론한 적은 있으나 원고(하이브)측의 동의를 전제로 이루어진 가정적인 내용이었음을 언급하며 "원고가 민희진에게 대표이사직 사임을 요구함과 동시에 감사권을 발동하고, 이를 언론에 터뜨린 것은 먼저 신뢰를 깬 행위"임을 명시했다.

결국 1심 재판부는 "법대로 한 것" 같다. 최소한 내가 해석한 법의 존재의의가 맞다면 말이다.

하이브 vs 민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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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어 - 성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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