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 은행 시스템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던 그 해 이후 2010년, 미국 의회는 도드-프랭크(Dodd-Frank) 법안을 통과시켰다. 은행들이 고위험 상업 대출에 대해 더 많은 자기자본을 쌓도록 강제하는 법이었고, 결과적으로 은행들의 여력이 줄어들면서 기업 대출의 주도권은 은행에서 사모 운용사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폴로, 블랙스톤, 아레스, KKR 같은 대형 사모 운용사들이 은행들의 공백을 빠르게 채웠다.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1.7조 달러 규모의 '프라이빗 크레딧'(사모 대출)이라는 그림자 금융 제국을 만들어냈다. 제로금리 시대에 국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에 연기금, 보험사, 국부펀드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몰려들며, 이 자산군은 '은행 바깥의 대안 금융'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지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급작스럽게 도입한 높은 관세와 예측 불가능한 재정정책이 글로벌 자본시장을 뒤흔들면서, 이 거대 시장에도 균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시장은 탄광 속 카나리아와 같습니다. 프라이빗 크레딧은 현재 존재하는 기업 대출 중 가장 리스크가 큰 구조입니다. 과도하게 차입 비율이 높은, 규모도 작고 취약한 기업들이 주요 차입자이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가장 먼저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 Dan Rasmussen, Verdad Advisers

프라이빗 크레딧의 핵심은 ‘직접 대출(direct lending)’이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중견기업에 은행 대신 대출을 제공하며, 은행의 대출이나 하이일드 회사채보다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프라이빗 크레딧이라는 용어 안에는 전략별로 수십 가지 유형이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이런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저금리와 유동성 호황기였던 지난 10년간, 프라이빗 크레딧은 낮은 디폴트율과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기관의 자산배분 필수 항목’으로 자리잡았다. 사모펀드들은 보험사를 인수해 고정수익 포트폴리오를 운용하고, ETF나 ‘에버그린 펀드’(만기가 없는 펀드) 같은 상품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점은 지났을 수 있다. 피치 레이팅스는 2024년 사모 직접대출 발행이 전년 대비 79% 증가한 1,45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2025년엔 신용지표가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2008년 이후 디폴트 사이클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이 시장은 실전 테스트를 받은 적이 없는 자산군입니다.”

문제는 이 시장이 얼마나 '불투명한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Jared Ellias 교수와 듀크대 Elisabeth de Fontenay 교수는 2024년 발표한 논문 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프라이빗 크레딧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시장 전체나 개별 대출 수준에서 신뢰할 만하고 종합적인 데이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어서 말한다.

“이러한 구조는 심각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의 일부가 완전히 사각지대로 들어가는 셈입니다. 앞으로 비상장 기업들의 평가가 터무니없이 잘못되거나 왜곡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감시와 감독이 부족한 시장은 회계부정과 기업 사기의 온상이 될 수 있습니다.”

불투명한 시장이지만, 그나마 공공시장에 상장된 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들을 통해 단편적인 신호는 포착할 수 있다. 최근 이들 BDC 주가는 급락 중이다.

Accelerate CEO 줄리안 클리모치코는 말한다.

“BDC들은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심각한 압박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관세 정책을 발표한 직후, BDC들이 시장에서 최대 30%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BDC의 주요 자산은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에 대한 선순위 담보대출입니다. 지금 시장은 이 대출의 20%가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5건 중 1건의 사모펀드 투자가 ‘제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사모 운용사 펀드의 수익률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바로 PIK(Payment-in-Kind) 구조다. 기업이 현금 대신 추가 대출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인데, 이는 기업의 유동성이 한계에 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어웨어랩 주식회사가 4년 만기로 100억원을 15% 이자율로 조달한다고 가정하자. 매년 15%의 이자를 현금으로 납부하는 대신, 회사는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대출을 추가로 조달한다. 대출 원리금 합계는 1년차 말에는 115억원, 2년차에 132억원, 3년차에 152억원, 그리고 4년차에 175억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현금 유출이 없다는 장점이 있고,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 입장에서는 복리로 불어난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당장 이자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PIK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만큼 디폴트할 리스크가 큰 것이다.

무디스에 따르면 일부 BDC는 전체 이자 수입의 10% 이상을 PIK로 받고 있으며, 블루 아울 테크놀로지의 경우 이 비율이 25%에 달했다.

IMF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3년 말 기준 프라이빗 크레딧 차입 기업의 40% 이상이 순현금흐름이 마이너스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여전히 PIK나 '연장 및 조건 변경(amend-and-extend)' 같은 방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관세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Adams Street Partners의 Jeff Diehl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디폴트율이 뚜렷하게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PIK 전환, 채무-지분 스왑 같은 신호는 분명 위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이자보상능력, 레버리지 비율, 매출과 EBITDA 흐름 등 보이지 않는 지표들을 투자자들은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이런 구조적 리스크는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 2022년부터 이미 쌓여왔다는 지적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일부 과잉 차입 거래에서는 이자 비용이 기업의 현금흐름을 초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는 애초에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KKR의 글로벌 프라이빗 크레딧 총괄인 Dan Pietrzak은 2024년 4월 전망에서 “거래 건수는 점차 회복될 것”이라면서도,

“하방 시나리오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수준이 레버리지 기업의 디폴트율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모든 리스크가 금융시장에선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SEC 전 의장 Gary Gensler의 비서실장을 지낸 Amanda Fischer는 지적한다.

“프라이빗 크레딧은 유동성이 극히 낮은 시장이라 신용질 악화를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시장 조정이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데 있다. IMF에 따르면 은행들은 이미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에 5천억 달러 넘는 자금을 대출했고, 이는 백레버리지 구조로 이어졌다.

“연준이 이 시장을 모니터링하긴 하지만, 프라이빗 크레딧 부실이 은행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리스크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제는 대형 은행들까지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최근의 시장 불안은 이러한 시도를 일단 멈추게 만들었다.

미 재무부 산하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도 지난해 연례 보고서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프라이빗 크레딧 대출자들의 불투명한 특성은, 규제기관이 리스크 관리나 리스크 축적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은행 및 보험사와의 상호연결성 증가, 낮은 가치평가 투명성, 소매 투자자 유입 확대는 시스템 리스크의 확산을 암시합니다.”

특히 보험사들의 역할은 더욱 우려된다. Fischer는 말한다.

“주 정부 규제 아래 있는 보험사들은 프라이빗 크레딧에 대해 외부 신용등급만으로 자본요건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신용평가사들이 부실 담보를 고등급으로 평가했던 구조와 흡사합니다.”

미국 주요 은행들의 프라이빗 크레딧 노출 정도

어웨어 추산 미국 은행별 프라이빗 크레딧 대출.
어웨어 추산 미국 은행별 프라이빗 크레딧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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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Morgan의 경우 비 금융기관 대출에 대해 '기타'로 분류해서 발표하므로, 프라이빗 크레딧에 대한 대출 비중이 과대평가 되었음.

2024년 기준, 미국 대형 은행들은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Private Credit Funds)에 약 2,140억 달러를 대출하고 있다. 이 대출들은 대부분 ‘Back Leverage’라 불리는 구조로, 사모 대출 펀드들이 차입 기업에 고금리 대출을 해주는 반면, 은행은 그 펀드에 투자등급 조건으로 자금을 제공한다. 이때 펀드는 자산으로 받은 기업대출 포트폴리오를 담보로 설정한다.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는 곳은 JP모건이다. 이들은 2024년 말 기준 NBFI(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익스포저만 1,330억 달러, Tier 1 자기자본의 약 48%에 달한다. 그러나 여기엔 사모 대출뿐 아니라 사모펀드(PE) 관련 대출도 포함된다. JP모건은 미국 금융당국이 요구한 세부 공시를 사실상 거부했고, 규제기관과 마찰까지 빚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시티그룹, 웰스파고 등도 각각 50~60억 달러 규모의 대출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기자본 대비 비중은 15~20% 내외로 추정된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이보다 낮지만, 역시 레버리지의 후방을 받치고 있다.

왜 ‘보이지 않는 위험’이 무서운가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에 대한 은행의 노출은 겉보기에 안정적으로 보인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사모 대출 펀드 대출은 Tier 1 자기자본 대비 평균 10~20% 수준이며, 대부분의 대출은 담보가 설정된 선순위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 자체도 폐쇄형으로 운영되며, 만기 전 환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동성 리스크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불어 펀드 내 레버리지 비율도 평균적으로 낮아, 외형적으로는 전통적 위험지표 상 큰 위협이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안정성의 많은 부분이 '평온한 시장'이라는 전제 위에 성립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이 구조는 실질적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 사모 대출 펀드가 본격적으로 부실을 겪은 사이클이 없었고, 이들이 담보로 보유한 자산군의 가치가 급락한 경험도 없다. 결국 지금의 구조적 안전판들은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적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시스템 내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험은, 리스크가 아니라 ‘가정’으로 존재한다.

더 큰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프라이빗 크레딧 펀드의 대출은 비공개로 이루어지며, 은행 입장에서도 펀드가 보유한 포트폴리오의 실제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펀드는 순자산가치(NAV)를 자체 모델로 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손실이나 가치하락은 시장에 반영되기보다는 장부상 ‘보류’된다. 기업이 디폴트에 이르기 전까지는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리스크를 은폐하기보다는 ‘지연’시키는 구조다. 평온한 시장에서는 유연성으로 작용하지만, 위기 시기에는 대응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또한 은행의 대출은 대부분 펀드의 총자산 기준으로 설계되지만, 실제로는 펀드의 자기자본이 손실을 모두 흡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가치가 20% 이상 급락하고, 회수율이 낮아질 경우, 펀드의 완충자본(equity buffer)은 순식간에 소진된다. 이때 은행은 담보 자산을 회수하거나, 펀드로부터 추가 담보를 요구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 시장이 매우 비유동적이라는 점이다. 가격 하락기에는 담보 처분이 쉽지 않고, 동시에 다른 펀드들 역시 유사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연쇄적인 평가절하(valuation markdown)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는 단순히 손실의 크기보다도, 그 타이밍과 가시성의 문제로 더 위험하다. 규제당국이나 시장 참여자가 문제를 인식했을 때는 이미 펀드의 NAV가 의미를 잃고, 담보 자산의 유동성도 고갈되었을 수 있다. 결국 지금의 프라이빗 크레딧 시장은 ‘지금까지 문제없었다’는 경험적 결론에 의존하는 구조이며, 그 구조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Dan Rasmussen은 말한다.

“빠르게 팽창하는 신종 대출 방식은 거의 예외 없이 파국을 맞이해왔습니다. 처음엔 ‘이건 안전하다’고 믿고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일으키죠. 그리고 그게 무너지면, 모두가 깜짝 놀랍니다.”

References

The Trillion-Dollar Private Credit Market Faces Its First Big Test | Institutional Investor
After the banking system nearly collapsed during the 2008 financial crisis, Congress in 2010 passed the Dodd-Frank legislation, forcing banks to hold more capital against risky commercial loans. It also pushed corporate lending into the hands of private equity firms like Apollo Global Management, Blackstone Group, Ares Management, and KKR.The upshot was a $1.7 trillion private credit industry that investors loved.
JP Morgan swerves regulatory request to disclose private credit lending data
JP Morgan has declined to share a breakdown of its lending to non-bank financial institutions, despite a request to do so.
JPMorgan snubs regulators over disclosure of private equity loans
US bank was alone among its peers in declining to break down lending by borrower type
How can banks adapt to the growth of private credit?
As private credit goes mainstream, banks may need to revamp strategies to meet corporate borrower needs
Fed’s Cook highlights emerging risks in private credit
Lisa Cook, governor of the Federal Reserve, has warned of emerging risks in private credit and commercial real estate in a new spe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