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보스턴에 본사를 둔 글로벌 시스템 기반 자산운용사 Acadian Asset Management(‘아카디안’)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활동 중인 Owen Lamont의 기고문을 종종 읽곤 하는데, 이번에 그가 새로 작성한 기고문 “THERE ARE IDIOTS: Seven pillars of market bubbles”를 읽고 번역하며 표면적인 '금융의 민주화'가 어떻게 '책임없는 쾌락'과도 닮아 있는지에 대해 작성해보았다.
우리는 지금 맹렬한 비트코인 버블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하다.
증시—적어도 밈 주식과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로 구성된—역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이런 투기적 광란의 기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래에 소개할, 시대를 관통하며 여전히 유효한 일곱 가지 문구가 그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바보들은 존재한다. 둘러보라.”
버블은 대체로 비이성적인 낙관주의자들을 동반한다. 이론적으로는 ‘바보’가 없어도 버블이 생길 수 있다지만, 현실에서 버블은 무지하고, 계산에 서투르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수많은 ‘이해 부족’ 투자자(“바보들”)가 몰려들 때 폭발적으로 커진다.“바보들은 존재한다. 둘러보라.”
이 문장은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가 남긴 전설적인 (하지만 미발표된) 논문의 첫 두 문장이자, 그 짧은 글 전체를 상징한다. “바보들은 존재한다”라는 가설(부인할 수 없음)과 “둘러보라”라는 증거(반박 불가)를 고작 다섯 단어로 제시한다. 실제 논문을 본 사람은 극소수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7단계 테탄’이라야 볼 수 있다는 농담도 전해진다). 하지만 리처드 탈러(Thaler, 2015)가 이 논문을 언급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럼 이제 이 “바보들”이 금융시장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견이 갈린다. 현재 상황을 보면, 필자는 바보들이 시장을 뒤흔든다는 행동재무학적 관점이 점점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 효율적 시장 가설 관점: 바보들은 어차피 서로 상쇄되거나, 제정신인 투자자들이 곧바로 그들을 상대로 거래하며 가격 왜곡을 무효화하므로, 최종적으로 시장 가격에 별 영향이 없다고 본다.
- 그로스먼-스티글리츠(Grossman-Stiglitz) 관점: 바보들이 존재해야만 부분적으로나마 효율적인 시장이 형성된다. 정보에 밝은 합리적 투자자들은 바보들과 거래하여 돈을 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정보가 시장 가격에 스며든다는 것. 다시 말해 “바보들”(좀 더 예의 있게 말하자면 ‘정보가 없는 트레이더’, ‘도박꾼’, ‘노이즈 트레이더’)이 바로 시장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셈이다.
-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 관점: 바보들은 실제로 시장 가격을 흔들어놓으며, 때로는 시장 전반에 걸친 버블을 만들거나, 명백한 상대적 오定價(미스프라이싱)를 유발하기도 하고, 그것이 오랜 기간 유지되기도 한다.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1929년 8월, 『레이디스 홈 저널(Ladies’ Home Journal)』에 실린 존 J. 라스콥(John J. Raskob)의 글 제목이다. 그는 이 글에서 열정적으로 미국인들에게 주식 투자를 권했다.
물론 주식 투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1929년에 그것도 과대평가된 레버리지 폐쇄형 펀드를 사라고 권한 것은 타이밍이 최악이었다. 결국 1930년대 대공황이 닥치자 “모두가 부자가 되긴커녕 대부분 가난해졌다.”거품에는 종종 “무한 번영의 유토피아적 미래”가 등장한다. 라스콥은 “금융의 민주화”라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지나치게 비싼 자산을 ‘폭탄 돌리기’ 하듯 대중에게 파는 오래된 전통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
영화계에서 흔히 회자되는 윌리엄 골드먼(William Goldman, 2012)의 말 “아무도 미래 흥행을 확신할 수 없다. 결국 전부 다 educated guess(합리적 추측)일 뿐이다.” 이 말은 월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로 어느 자산이 오를지 내릴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가진 여러 이론 또한 자산 가격이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고 가정한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에 따른 결론은, 미래를 단언하는 사람은 ‘돌팔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돌팔이(Charlatan)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과장된 투자 의견을 내놓는 분석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언장담하는 인플루언서, 전능한 척하는 CEO 등. 요즘은 암호화폐 ‘돌팔이’들이 급증하며 주식 시장으로도 침투하는 모습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Galbraith, 1994)는 말한다.
“다음 큰 버블은 언제,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일어날까? 누구도 모른다. 감히 ‘난 안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 무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는 곧, “금융시장 결과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무지한(더닝-크루거 유형) 사람들이 왜 이렇게도 확신에 차 있을까?”라는 문제로 이어진다(Dunning, 2011). 그렇다면 왜 대중은 이런 확신으로 가득 찬 돌팔이들의 말을 듣게 되는 걸까? 예를 들어, “비트코인이 내년에 오를까요?”라는 질문에:
- 나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 돌팔이는 “비트코인은 암호화된 하이퍼컴퓨팅으로 매출 역최적화를 극대화하니 50% 오릅니다. 현금보다 안전합니다.”라고 답한다.
누가 더 자신 있어 보이고, 누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주는 것처럼 보일까? 실제로는 아무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는데도, ‘모든 것을 아는 척’하는 돌팔이가 주목을 끄는 것이 현실이다.
“광신자는 마음을 바꾸지 않고, 주제를 바꾸지 않는 사람이다.”
이 명언은 처칠 또는 트루먼의 말로 자주 인용되는데, 현재 비트코인 광풍을 주도하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를 잘 묘사한다. 이들은 비트코인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굳게 믿고, 그것을 몇 시간이고 열렬히 설파한다. Pedersen(2022)에 따르면, 이런 광신적 낙관주의자들은 미定價(오버프라이싱)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낙관론을 전파하며, SNS나 커뮤니티에서 ‘인플루언서’ 혹은 ‘생각 지도자(thought leader)’로 활약한다. 2022년 한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장은 ‘거의 죽었다’고 할 정도로 바닥을 쳤다. 하지만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마음을 바꾸지도, 이야기를 그만두지도 않았다. 결국 이들의 낙관적 메시지는 ‘타이포이드 메리(Typhoid Mary)’가 병을 퍼뜨리듯 대중에게 계속 전염된다.
“혼란스러울수록 좋다.”
“암호화폐가 왜 좋지? 비트코인의 쓰임새가 뭐지?”라는 간단한 질문조차, 매년 답이 달라진다. 딱 부러지는 정의가 없기에, 오히려 그 수수께끼 같은 ‘수학적 신비로움’이 사람들이 더 쉽게 그 가치를 반박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제 폰지 사기들도 종종 복잡성과 난해함을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Chancellor(2000)에 따르면, 1720년 ‘남해 회사 버블(South Sea Bubble)’을 주도한 사기꾼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혼란스러울수록 좋다. 사람들이 자기들이 뭘 하는지 모르면, 오히려 우리 계획에 더 열광하게 될 테니까.”
1960년에 잭 드레이퍼스(Jack Dreyfus)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다.[1]
“40년간 구두끈을 만들어온 작은 회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의 주가수익비율(PER)은 6배 정도로, 그럭저럭 적정한 수준이다. 여기서 회사 이름을 ‘Shoelaces, Inc.’에서 ‘Electronics & Silicon Furth-burners’로 바꿔보자. 지금 시장에서 ‘일렉트로닉스(electronics)’와 ‘실리콘(silicon)’이라는 단어는 PER 15배를 받을 만큼 핫하다. 하지만 진짜 노림수는 ‘furth-burners’라는 말이다. 아무도 그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주가수익비율을 다시 두 배로 뻥튀기할 수 있다.”
오늘날 비트코인은 바로 이 ‘퍼스-버너(furth-burner)’ 같은 존재다. 아무도 확실히 모르기에, 더더욱 사람들이 매혹된다.
“숫자는 올라간다.”
금융시장의 핵심 동학 중 하나를 요약한 말이다. “숫자는 올라간다(Number go up)”는 추세 추종 심리, FOMO, 혹은 필자가 이전에 ‘수익률 추적 자금 흐름의 철칙(Iron Law of Return-Chasing Flows)’이라 부른 현상을 잘 대변한다. 사람들은 과거에 수익이 좋았던 자산으로 몰린다. Zeke Faux의 저서 『Number Go Up』(2023)은 암호화폐의 흥망성쇠를 생생히 다룬다. 다만 요즘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뜨겁기에, 그의 다음 책 제목은 “Number Go Up Again”이 될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다르다.”
존 템플턴 경(Sir John Templeton)은 이렇게 말했다.
“이전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음에도 ‘이번에는 다르다’라고 말하는 투자자는, 투자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두 마디 말을 입에 올린 셈이다.”
물론 시장 상황은 언제나 조금씩 다르다. 과거와 똑같은 시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진짜 지혜는 ‘근본적으로 유사한 패턴’과 ‘주변부의 사소한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데서 비롯된다.
찰스 매케이(Charles Mackay)는 『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the Madness of Crowds』(1841)에서 여러 역사적 거품을 고발했지만, 정작 그 자신도 1845년 영국 철도 거품에 휩쓸려 주식을 사들였고, 한창 고점일 때도 이것이 거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Harford, 2023 참조). 당시 매케이는 이렇게 말했다.
“다가오는 철도 위기에 대해 경고하는 이들은 너무 위험을 과장한다 … 그들은 과거 버블과 이 사안을 피상적으로 비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더 깊이 살펴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라면, 원인이 충분히 유사하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결과도 과거와 같을 거라고 예상할 이유가 없다.”
번역: "이번에는 다르다."
[1] 일부 출처에서는 이 일화가 여러 형태로 인용되기도 함.
'금융 민주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코인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1) 가치의 기초가 되는 현금흐름이 없고 (2) 인간 사회에 어떤 효용을 주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총을 겨누고 코인 투자를 하라고 종용한다면 비트코인을 선택할 것이다. 만약 모든 코인 프로젝트가 궁극적으로 사기라면(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장 크고 원대한 프로젝트를 택하는게 합리적으로 맞으니까. 참고로 코인을 '트레이딩' 하는건 투자와는 다른 영역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Robinhood, 한국에서 Toss (토스) 같은 서비스가 금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고 온 해결책은 금융 상품에 대한 접근성을 편리한 UX를 통해 '민주화' 시키겠다는것인데, 위키피디아에 서술된 정의를 한번 읽어보자.
민주주의(民主主義, 그리스어: δημοκρατία dēmokratía[*], 영어: democracy)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 민중에게 있고 민중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며 민중과 시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이자 그러한 정치 사상이다. 그리스어인 demos(민중)와 cratos(지배)라는 두 가지 단어의 합성어 democratia에서 유래한다.
필자는 예전부터 금융에는 적정 수준의 불투명성과 불확실성이 공존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경제 블로그 interfluidity의 "금융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글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Nick Rowe는 금융을 마법에 비유했다. 내가 선택할 단어는 '플라시보'이다. 금융 시스템은 우리가 더 큰 경제적 리스크를 공동적으로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설탕약이다. 모든 효과적인 플라시보가 그렇듯이, 우리는 이것이 그저 설탕 조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머리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과학 기술로 이루어진 알약을 먹는다고 믿어야 한다. 금융 플라시보 행상인들이 우리를 그렇게 설득한다.
그러나 이는 옛 은행 중심의 금융 환경을 전제 하는것이고, 요즘은 (출처가 불분명한)정보의 활발한 공유와 모바일 기반 금융 플랫폼의 남발(?)을 통해 금융 소비자들이 금융 상품에 직접 투자하는게 그 어떤 때 보다 쉬워졌다. 여기서 생각해볼건 금융 접근성을 대폭 개선한게 과연 소비자편익을 증진했느냐다.
중소규모 부동산 PF 상품, P2P 대출 상품, 크라우드 펀딩 등 여러 시도들이 밝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일반적인 금융 소비자들은 상당히 멍청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좋은 프로젝트와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를 구분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따라서 대체로 좋아보이게 포장된(그러나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에 지나치게 많은 유동성을 공급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업계 표준 용어를 쓰자면 '호구'라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와 리스크를 설명하지 않고 무작정 접근성을 개선하는건 금융의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금융사들이 쓰레기 금융 상품을 마음대로 찍어내도록 유도하는 '책임없는 쾌락'에 가깝다. 고로 우리는 Toss가(혹은 그 어떤 플랫폼이) 금융을 혁신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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