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미국의 기술 기업들은 유산과 기형아 출산을 유발하는 화학물질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공급업체들이 이를 지키도록 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의 2017년 6월 5일자 기사 “American Chipmakers Had a Toxic Problem. Then They Outsourced It”를 인용:

역학 연구의 결과는 종종 불명확하며, 기업의 ‘연구비 지원’은 과학적 사실을 다소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예: 담배 회사와 암 연구자들 간의 논쟁).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는 사례는 드물지만, 1984년 어느 날 해리스 파스티데스 교수가 재직 중이던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의 역학과에서 바로 그런 사례가 등장했습니다.

Digital Equipment에서 건강 및 안전 관리자로 일하며 학업을 이어가던 대학원생 제임스 스튜어트는 파스티데스 교수에게 회사의 공장이 있는 허드슨, 매사추세츠에서 유산 사례가 여러 건 발생했다고 알렸습니다. 당시 미국 기술 산업 생산직의 약 68%를 가임기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스튜어트는 외부인이 거의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컴퓨터 칩을 만드는 과정에는 수백 가지의 화학 물질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생산 라인의 여성들은 이른바 클린룸에서 작업하며 보호복을 착용했지만, 이는 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은 생식 독소, 돌연변이 유발 물질, 발암 물질을 포함한 화학 물질에 노출되었으며, 일부 경우에는 직접 접촉하기도 했습니다. 직업 건강에서 생식 위험은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데, 이는 노동자의 태아가 선천적 결손증이나 어린이 질병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생식 문제가 노동자 본인에게는 노출 후 오랜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는 질환, 특히 암의 전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Digital Equipment는 연구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고, 질병 클러스터 전문가인 파스티데스 교수가 이를 설계하고 수행했습니다. 1986년 말 데이터 수집이 완료되었고,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유산율이 예상치의 두 배에 달했던 것입니다. 11월에 회사는 이 사실을 직원들과 반도체 산업 협회에 공개했으며, 이후 대중에게도 알렸습니다. 파스티데스와 그의 동료들은 일부에서는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나, 특히 산업계에서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산업 협회(SIA) 소속 기업들은 파스티데스 교수의 연구방법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압력 아래 더 많은 연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의 과학자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노동자 건강 연구 중 하나를 설계했으며, 이 연구에는 14개의 반도체 산업 협회(SIA) 기업, 42개의 공장, 50,000명의 직원이 참여했습니다. IBM은 자체 공장이 다른 공장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하며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 연구를 의뢰하였습니다.

역학 연구에서는 후속 연구가 보통 더 크고 어려워지며, 이 때문에 종종 서로 모순되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나 1992년 12월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드문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 연구—모두 산업계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연구—모두가 유사한 결과를 보였던 것입니다: 잠재적으로 노출된 수천 명의 여성들에게 유산율이 약 두 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산업계가 신속하게 반응했습니다. SIA는 칩 제조에 널리 사용되는 독성 화학물질군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 화학물질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키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IBM은 더 나아가 1995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에서 이 물질들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파스티데스 교수는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 사건 전체를 공중 보건 역사상 가장 큰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여겼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평가했습니다. 산업계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세 연구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파스티데스는 "이것은 공중 보건에서는 거의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아쉽게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반도체 생산이 더 저렴한 국가로 이전되면서, 산업계가 약속한 수정 조치들이 완전히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검토한 기밀 자료에 따르면, 최소 2015년까지 수천 명의 여성과 그들의 태아가 여전히 동일한 독성 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아마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출되고 있을 것입니다. 별도의 증거에 따르면, 같은 생식 건강 문제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2010년, 김명희라는 한국 의사가 의과대학의 조교수직을 떠나 서울의 작은 연구소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역학 연구자인 김 박사에게 이는 5년 전 하버드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시작한 공중보건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새 직책에서 김 박사의 관심을 끈 것은 한국의 전자 산업에서 발생한 일련의 암 발병 사례였습니다. 특히 두 명의 젊은 여성이 같은 삼성전자 작업장에서 같은 화학물질을 사용하다가 동일한 형태의 공격적인 백혈병에 걸린 사건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질병은 매년 10만 명 중 3명에게만 발생하지만, 이 젊은 여성들은 8개월 이내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이 질병은 발암 물질과 가장 명확하게 연관된 질병 중 하나였습니다. 활동가들은 삼성 및 다른 반도체 회사에서 더 많은 사례를 발견했으며,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산업계 경영진은 이러한 연관성을 부인했습니다.

김 박사는 전 세계 반도체 노동자 대한 직업 건강 연구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는 한국에서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2010년까지 40개의 다른 연구가 발표되었음을 발견했으며, 거의 모든 연구가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을 언급했습니다. “이것이 전자 산업이 아니라 화학 산업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물리학이 반도체 칩의 설계를 주도하지만, 생산은 주로 화학 물질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본적으로 화학물질과 빛이 결합하여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인쇄하는 방식으로 반도체가 제조됩니다. 인텔의 창립자 중 한 명이자 1960년 현대 칩의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고든 무어는 원래 화학자였습니다. 그는 물리학자인 제이 라스트와 함께 인쇄 공정(lithography)에 밀접하게 협력했습니다. 라스트는 화학유산 재단의 구술 역사 프로젝트에서 무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반도체 생산에 정말로 끔찍한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물질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고, 그 물질들을 도시 하수 시스템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무어는 몇 년 후 인텔 공장 아래의 하수 파이프를 파헤쳤을 때 “파이프 아래쪽이 완전히 부식되어 있었고, 그때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신경 써야 하는지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당국은 실리콘 밸리의 중심지인 산타클라라 카운티에 미국 내 다른 어떤 카운티보다 많은 유해 폐기물 저장시설을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김 박사가 과학적 검토에서 알게 된 것처럼, 인쇄 공정에서 중요한 화학 혼합물 중 하나는 포토레지스트라 불립니다. 이것은 회로 패턴을 칩에 사진 인쇄할 수 있게 하는 감광성 화합물입니다. 무어와 라스트는 구술 역사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그들이 사용한 화학물질의 위험성이 1960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포토레지스트 성분의 위험성을 연결하는 연구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성 성분은 에틸렌 글리콜 에테르(EGE)라고 불렸습니다. 이들은 칩의 인쇄 공정에서 칩을 청소하는 데 사용되는 스트리퍼(stripper)로 알려진 용매 혼합물의 주요 성분이 되었습니다.

김명희 박사는 Digital Equipment에서 파스티데스 교수가 수행한 연구와 IBM과 함께 작업한 존스 홉킨스 과학자들이 같은 화학물질을 발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IBM 연구는 EGE와 직접적으로 작업한 여성들의 유산율이 세 배로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별도의 연구들은 EGE가 고무 장갑을 쉽게 관통하며, 피부 흡수가 가장 위험한 경로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수준보다 500배에서 800배 높은 노출률을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위험성은 너무나 명백하여 미국 직업안전보건국(OSHA)은 1993년에 실제로 기업들이 EGE를 금지해야만 준수할 수 있을 만큼의 매우 미세한 노출 수준을 공식적으로 제안했습니다.

김 박사의 연구는 그 모든 연구뿐만 아니라 이후에 수행된 연구들까지 다루었습니다. 역사적인 생식 건강 연구는 반도체 칩 생산이 남성 노동자의 자녀에게 치명적인 선천적 결함, 여성 노동자의 자녀에게 소아암, 불임 및 장기적인 생리 주기와의 연관성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발표된 거의 모든 연구에서 김 박사는 동일한 표현의 일종을 읽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중반에 EGE를 단계적으로 폐지하였으며, 이는 생식 건강 문제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진술은 이치에 맞았습니다. IBM과 다른 회사들이 EGE 사용을 중단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이 화학물질들은 국제 표준에 따라 1급 생식 독소로 분류되었고, 유럽 규제 당국은 이를 과학적으로 알려진 가장 유독한 화학물질 목록에 포함시켜 매우 높은 우려 물질로 지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박사는 뭔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피험자 집단에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한국 여성들은 몇 달, 심지어 1년 동안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 흔하다고 김 박사의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일부는 이러한 생식 시스템의 잠재적으로 불길한 변화를 경고가 아닌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 생산직의 여성은 대부분 가임기 나이로, 12만 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채용됩니다. 김 박사와 한 동료는 새로운 생식 건강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파스티데스와 다른 미국 연구자들이 직면하지 않았던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산업계의 비협조.

2013년, 그들은 한 한국 국회의원을 설득하여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그들은 2012년까지 5년 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가 소유한 공장에서 일하는 가임기 여성들의 건강보험 급여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최대의 칩 제조업체 중 두 곳이기 때문에 연구 대상 여성의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데이터는 연평균 38,000명의 여성을 포함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중 유산으로 병원을 찾은 여성들의 기록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는 파스티데스가 거의 30년 전 경험했던 것처럼 김 박사에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유산율이 현저히 높았으며, 30대 여성의 경우 유산율이 미국 공장의 거의 동일한 수준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보수적인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여성들이 유산으로 병원에 가지 않으며, 생산 노동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들과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 박사는 “이것은 내가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논문에서 김 박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이전 연구의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EGE는 산업계에서 단계적으로 사용이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에서 그들은 이를 확실히 단언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공장에서 이온화 방사선 등 다양한 다른 생식 독소와 환경적 위험 요소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경고를 덧붙였습니다: “우리의 데이터가 한국의 세 대기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소규모 기업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러한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90년대 미국의 변화 이후, 화학 회사들은 아시아를 포함한 반도체 칩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포토레지스트 및 기타 제품의 성분을 변경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가 입수한 시험 데이터에 따르면, 변경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경우에 따라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9년, 한국 과학자들은 삼성전자 공장과 SK하이닉스 공장에서 포토레지스트 드럼에서 채취한 10개의 무작위 샘플을 테스트했습니다. 당시 우려는 백혈병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포토레지스트는 그 질병과 관련된 독소만을 테스트했습니다. 하나는 삼성전자의 직원들을 사망하게 한 희귀한 형태의 백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벤젠이었고, 다른 하나는 EGE 중 가장 독성이 강한 2-메톡시에탄올(2-ME)이라는 화학물질이었습니다. 테스트 결과, 10개의 포토레지스트 샘플 중 6개에서 2-ME가 검출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농도의 두 샘플 중 하나는 SK하이닉스에서, 다른 하나는 삼성전자에서 나왔습니다.

한국 과학자들은 테스트된 드럼을 제조 및 판매한 화학 회사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제품 번호를 기록했습니다. 이 번호를 특허 데이터와 대조한 결과, 2-ME 농도가 가장 높은 두 포토레지스트는 동일한 제조업체인 도쿄의 신에츠 화학에서 제조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해당 회계 연도 신에츠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신에츠는 “세계 최고의 포토레지스트 제조업체로,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시아 전역의 반도체 공장에서 2-ME에 대한 노출 가능성을 높입니다. 타이베이에 있는 한 회사인 탑코 사이언티픽은 대만과 중국에서 신에츠 화학 제품의 독점 유통업체이며, 증권 신고서에 따르면 포토레지스트는 주요 수익원입니다. 포토레지스트 판매를 감독하는 탑코의 한 임원은 2-ME 농도가 가장 높은 두 특정 제품이 수년 동안 대만과 중국의 반도체 회사에 판매되어 왔다고 확인했습니다.

반도체 업계는 사실상 미국 노동자의 위험물질 노출과 해외 여성 노동자의 위험물질 노출을 맞바꾸고 있었습니다.

신에츠 화학 대변인인 테츠야 코이시카와는 처음에는 자사 제품의 화학 성분이나 고객 공장의 생식 건강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거부했습니다. 후속 이메일 성명에서 그는 신에츠가 자사의 포토레지스트에 2-ME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 한국 과학자들은 이전의 포토레지스트 테스트를 이어받아 확장하여 7개의 반도체 제조업체에서 무작위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이번에는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채취한 샘플에서는 2-ME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작은 회사에서 채취한 샘플에서는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테스트 데이터는 회사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공유되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논평을 거부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내부 기록 보관 범위가 2011년까지이기 때문에 EGE가 완전히 제거된 것이 그 시점이라고 확신할 수 있지만, 서병훈 대변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공급업체들이 화학 혼합물을 변경하기 시작하면서 EGE의 전환이 그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삼성전자가 2009년 공장에서 2-ME가 검출된 테스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이를 확인하거나 재현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는 또한 “삼성전자는 임신 및 출산 권리에 대한 엄격한 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임산부를 위한 특별한 케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임산부는 화학물질을 취급하거나, 야간 근무를 하거나, 추가 근무를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의 해당 기사는 그 뒤로도 한참 이어지지만, 중요한 부분은 거의 모두 언급된 듯 하여 이정도 시점에서 끊었다. 궁금한 독자는 첫 줄의 링크를 클릭하여 나머지 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미디어에서 최첨단, 유망 산업으로 인정받는 반도체 칩의 설계 및 제조 관련 원천기술은 거의 대부분 미국이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ASML 같이 EUV를 생산하는 ‘슈퍼 을’ 반도체 장비기업들도 미국이 대중국 관련 반도체 제재를 발표하면 별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미국이 1980~90년대 반도체 제조의 상당부분을 아시아로 이전한 것은 결국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비용에는 반도체 팹(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직접인건비도 포함되지만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한 각종 안전 규제로 파생되는 부수적인 간접 비용 또한 포함되는데, 이러한 간접 비용들이 쌓여서 결국 ‘생산성’을 깎아내리기 때문에 기업 경영진은 이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선진국일수록 사람 한 명의 목숨값이 비싸기 때문에 결국 위험한 일들은 주로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제 3의 국가에게 수출되고는 하는데, 여기서 우리나라는 21세기 경제를 지탱하는 유망 산업인 반도체 산업을 배정(?)받게 된 것이고, 반도체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여성 생산직 노동자들과 엔지니어들의 잠재적 건강 문제는 주로 미국대학에서 석박사를 마친 기술에 해박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의 경영진은 인지를 하고도 원청이 제시하는 ‘경제적’ 단가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을 일부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는 사람들의 선호도를 재화로 투명하게 표시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보 비대칭이 있는 시장(예: 회사는 유해 물질을 인지하고,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한)에서 단기적으로는 효율적으로 동작하지 않고, 정보 우위에 있는 주체가 한 거래에서 단기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추출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한 사람의 목숨값이 높아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공장에서 재직했던 직원이 퇴사한 경우에도 직업환경 연관성이 인정되는 질병을 얻거나 사망을 한 경우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했던 시장에서 발생했던 비효율적 거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되며 해당 거래에서 ‘초과이익’을 창출한 주체가 이를 거래 상대방에게 일부 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이며, 한 개인의 관점에서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것과 이에 수반되는 모든 리스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면 그 수많은 노동 거래는 체결되었을지 의문이다. 거시경제에서 목숨값은 궁극적으로 수요와 공급 그 사이에서 결정될 수 있지만, 한 개인에게 그 값은 무한대에 수렴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 냉정한 시장에서 나에게 불리하지 않은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