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의 2월 18일자 “5대 금융, 해외부동산 투자로 1조원 날려” 기사를 읽어보면 “고객에게 판매한 해외 부동산 펀드 등과는 별개로 금융그룹이 자체 집행한 투자로, 전체 원금은 20조 3868억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금융사 대체투자 인력들이 대책없이(?) 사온 해외부동산 자산의 대부분은 펀드나 리츠(Real Estate Investment Trust; 부동산 투자신탁) 형태를 통해 우리같은 일반인들이나 우리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에 판매 되었다는 것이다. 북미와 유럽의 상업용 건물(주로 오피스)이 역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시기에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서로 더 높은 가격을 부르며(어차피 국민연금이 사주겠지?) 입찰 경쟁을 한 행태에 대해 비판할 여지는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들어 내가 감수성 없이 너무 비판적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으므로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5대 금융그룹은 이 중 대출 채권을 제외하고 수익증권과 펀드 등 512건의 투자에 총 10조4446억원의 원금을 투입했다”고 하는데, 풀어 설명하면 에쿼티 투자의 비율이 반쯤 되었다는 뜻이다. 에쿼티는 주식, 채권은 대출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대출은 비교적 원금 손실이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에쿼티는 부동산 가치가 하락하면 무조건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채권자들이 자산에 대한 권리 측면에서 우선되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5대 금융그룹의 전체 평가 수익률은 -10.53%로, 총 1조원 가량의 손실이 났다고 한다. 물론 이는 현재까지 확정된 규모로, 펀드 만기가 다가오면서 가치평가를 다시 하거나 실제로 매각을 하게 될 경우에는 더 큰 손실을 보게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부동산 주식으로 수익낸 얘기에 이 기사부터 가져온 이유는 제대로 된 분석없이 투자하면 부동산도 매우 위험한 투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데일리 기사 “하루새 20%에서 -50%로… 못 믿을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에서 다룬 미래에셋맵스 리츠 상품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렇다면 AW 포트폴리오에 총 78%(배당 포함)의 수익률을 가져다 준 기업은 무엇이고, 왜 같은 상업용 부동산 자산임에도 좋은 성과를 보여주었을까? 비결은 사모시장과 공모시장의 차익거래(arbitrage)에 있다.
해당 기업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SL Green Realty (티커: SLG)라는 리츠이다. 금융사들이 201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투자한것과 똑같은 오피스 건물들을 포트폴리오로 갖고 있는 기업이며 편입 시점은 2023년 6월 21일, 편출 시점은 2024년 2월 14일이다.
SLG의 지난 1년간 주가 추이인데, 먼저 3월에 급격하게 주가가 하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복기를 해보자면, 작년 3월은 SVB(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며 미국의 중소규모 은행들에 대한 우려가 극도로 높았던 시기였다. 중소규모 은행들은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대출채권 규모가 컸었는데, 시장금리와 오피스 공실률이 동반으로 오르면서 자산가치가 감소했고, 결국 해당 은행들도 타격을 받을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주요 중소규모 은행들과 오피스 건물 위주의 상업용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SLG 또한 주가가 해당 시점을 기점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여기서 차익거래(arbitrage) 기회를 발견하는데, 투자자들이 극한의 두려움에 쌓인 나머지 퀄리티 높은 건물들을 보유한 SLG 마저 무차별적으로 매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오피스라고 다 같지는 않다
2023년 1분기 기준 뉴욕시 오피스 공실률은 22.2%로,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당 시점 SL Green Realty가 보유한 오피스들의 통합 임차율은 90%로, 공실률이 1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회사가 보유한 자산들은 A급,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프라임’급 이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첫번째 사진에 나온 건물은 One Vanderbilt로, 뉴욕시에서 가장 임대료가 비싼 건물이고 SL Green Realty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다. 해당 자산은 신식 건물이며 맨해튼 핵심 위치임은 물론이고 미쉐린 3 스타 레스토랑 등의 고급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LEED 인증 등 환경 친화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라임’급 건물들에 대한 수요는 주로 Bulge Bracket 투자은행, 유명 로펌, 빅테크 등의 우량 기업들에서 오는데, 이들은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핵심 위치의 최고급 어메니티를 갖춘 오피스를 이용한다. 이런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경기침체에 둔감하고 좋은 오피스에 대한 지불의사가 높기 때문에 다른 B급 오피스의 임차료가 저렴해지더라도 쉽게 ‘다운그레이드’하지 않는다. SLG의 통합 임차율이 90%로 선방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당시에 나는 SLG의 오피스 포트폴리오가 일반적인 뉴욕 오피스 건물들로 구성된 한국의 공모 펀드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했고, 급격한 주가하락으로 인해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mispricing 현상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SLG의 프라임급 오피스 건물이 고점대비 5~10% 가량 하락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다른 B급 오피스 건물들의 거래가가 30% 가량 하락했기 때문에 SLG 또한 같은 선상에서 비교받는 상황일 확률이 높았다.
이에 4~5월에 주가가 바닥을 치는것을 확인하고 6월 21일 포트폴리오 편입을 게시했고, 6월 26일 SLG가 보유 건물 중 하나를 20억 달러에 평가받으며(고점대비 7% 가량 하락한 수준) 일본의 모리신탁의 지분투자를 유치하면서 주가는 상승세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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