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소재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사인 ASML이 한국시간 기준 15일 새벽에 그 다음날 발표 예정이던 3분기 실적을 일찍 공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회사에 따르면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실적이 예정보다 일찍 공개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발표 내용인데, 3분기에 확정된 주문 예약이 애널리스트 예상치(58억 유로)를 훨씬 하회하는 26억 유로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엘리트 부티크 투자은행인 Jefferies사의 한 주식 애널리스트가 실적 공개 수시간 전에 ASML의 주문 예약에 대해 긍정적인 논평을 담은 리포트를 발간한게 무색하게도 예상치의 50%를 밑도는 신규 주문량은 반도체 업계 회복 전반에 대한 의구심을 촉발했고, 주가는 16% 하락해 26년래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엔비디아(NVDA)와 마이크론(MU) 또한 각각 4%와 3%대 하락하며 반도체 섹터 전반적으로 조정을 보였다.
벌써부터 "중국 수출금지 때문인 것 같다"등의 추측성 발언이 난무하는 가운데, 필자는 ASML 및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와 같은 반도체 장비 업계의 실적 둔화는 예고된 상황이었으며, 이는 반도체 섹터 전반의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는 대표적인 반도체 장비 고객사인 TSMC, 삼성전자, 인텔 등의 CAPEX(설비투자) 지출 계획을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다.
현재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를 제외한 반도체 업계 공룡인 삼성전자와 인텔은 파운드리 부문에서 고객사 확보 실패 및 수율 문제로 인한 낮은 가동률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예정했던 공장 신축을 미루고 있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 소요되는 비용의 90% 가까이가 장비 투자금임을 감안할 때 이는 장비사의 매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는 요소이다.
2022년 반도체 겨울이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장 증설을 이어나갔던 삼성전자와 인텔, 그리고 중국 반도체 기업들로 인해 계속해서 호실적을 이어나갔던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2024년 말에 들어서야 지속 불가능한 수요에 대한 값을 치루는 것이라고 해석하는게 옳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 부문을 포함한 종합 반도체 세계 1위라는 비현실적인 목표 설정을 달성하기 위해 고객사 확보도 하지 못한채 보유하고 있는 100조원 가량의 현금으로 계속해서 투자를 이어나갔고, 인텔의 경우 미국 정부의 보조금 및 저리대출을 무기로 신규 공장 계획을 무리해서 발표했다. 중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기반으로 반도체 장비를 주문했다.
필자가 여러차례 경고했듯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는 5nm 이하의 선단 공정에서 TSMC에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인텔은 자사 최신 CPU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업부 분리 후 TSMC에 위탁 생산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진이 가장 높은 데이터센터용 CPU 시장에서 AMD에 점유율을 점차 내주고 있으니, 자사 파운드리 가동률이 회복할 기미는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
이로써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인텔 등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기업들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 물량을 사실상 독점한 TSMC는 가동률 상승 및 가격 협상력 우위를 통해 높은 매출총이익률을 누리고 있으며, CAPEX 지출 또한 원래 계획된 범위의 상단을 유지중이다.
결론적으로, 지난 2년간 반도체 업계의 무분별한 과잉 설비투자로 인해 ASML을 포함한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으며, 현실적인 ROI 계산없이 주문을 넣었던 삼성전자와 인텔이라는 두 제조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판매처가 줄어들며 가격협상력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라고 판단된다. 비이성적이었던 반도체 장비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을 또 다시 찾아온 반도체 업계 전체의 겨울이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반대로, TSMC의 경우 높은 선단 공정 제조경쟁력을 바탕으로 고객들과의 가격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조달 측면에서도 협상력이 높아지면서 높은 이익률의 유지 혹은 상승이 예상된다.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삼성전자 박OO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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